꼼지락 거리기

새들과의 전쟁

큰가방 2020. 10. 31. 15:06

새들과의 전쟁

 

길을 가다 우연히 누구네 집 울타리 가에 활짝 핀 봉선화 꽃을 보았는데 그 순간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1960년대 이맘때쯤 봉선화 꽃이 피면 동네의 누나들은 꽃잎을 따서 돌 위에 놓고! !’찧은 다음

 

꽃잎을 콩알만큼 떼어 손톱위에 놓고 비닐로 둘둘 감아 묶어놓으면 다음날 예쁜 꽃물이 들었는데 요즘에도 그렇게

봉선화물을 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데 어이! 동생!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불러도 모르고 있는가?”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잘 아는 선배께서 활짝 웃고 있었다. “형님 오셨어요?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세요?”

그냥 집에 있기 심심해서 나와 봤네!” “그럼 요즘에는 할 일이 없으신가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이 왜 할 일이 없겠는가?

 

일을 하려고 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시골일인데 그런다고 날마다 일에만 빠져 살면 되겠는가? 가끔은 쉬는 날도 있어야지 안 그런가?”

그건 형님 말씀이 맞네요. 아무리 바빠도 쉴 때는 쉬어야 능률도 오르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형님 집에 사과나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모기장 같은 걸 씌워놓으셨던데 그건 왜 그렇게 해 놓으셨어요?” 묻자 갑자기 ! ! !”웃더니

우리 집 사과는 추석(秋夕) 안에 따먹을 수 있는 조생종(早生種)이거든 그래서 맛이 일찍 드는데 아직 나도 한 개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까치 열댓 마리가 날아와 마치 자기 것처럼 파먹고 있더라고, 그걸 보니 얼마나 미운지 이것들을 몽땅 잡아 혼을 내주고 싶지만

어디 그게 맘대로 할 수가 있는가? 그래서 새들이 공격을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다 마치 집에 옛날에 쓰던 모기장이 생각나서

 

그걸 씌워놨더니 그 다음날 까치가 수대로 날아오더니 한참을 사과나무 주위에서! !’거리고 야단이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다른 데로 가라!’쫓아버렸더니

 

그 다음부터 안 오더라고.” “까치들이 정말 영리하네요.” “그런데 요즘은 농산물도 그야말로 새들과 전쟁(戰爭)을 치러서

승리해야만 수확을 할 수 있어.” “새들과 전쟁을 치르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며칠 전 자네 형수가 참깨를 베어다

 

담벼락에 길게 세워 놓았거든.” “그건 저도 보았는데 깨는 얼마나 나오던가요?” “그런데 참깨 대가 마르면서

알이 하나둘 밑으로 쏟아질게 아닌가?” “그렇지요.” “그런데 그걸 비둘기가 왔다 갔다 하면서 모조리 주워 먹고 있어!”

 

정말요? 아니 그게 참깨인줄 비둘기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글쎄 나는 가르친 적이 없으니 본능적으로 알고 있거나

또는 부모에게서 배웠던지 했겠지! 그런데 대가 마르면 알이 쏟아지는 줄 어떻게 아는지 기가 막힐 노릇일세!

 

그리고 요즘 비둘기들은 사람을 봐도 별로 겁도 안내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쫓으면 조금 날아가는 척 하다 다시 와서 먹어치우더라고.”

비둘기가 간이 부었을까요?” “글쎄 간이 부었는지 어쨌는지 내가 안 봐서 모르겠지만 엊그제는 고구마 밭에 가 봤거든.”

 

그러면 작황은 어떻던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누가 고구마를 파먹은 흔적이 있어!” “정말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런데 밭 한쪽에서 꿩이푸드득!’하고 날아가더라고.” “꿩이 고구마 밭에는 뭣 하러 왔을까요?” “그래서 날아간 곳으로 가 보았더니

 

꿩이 발로 긁어 고구마를 쪼아 먹었더라고.” “정말 화가 나셨겠네요.” “그래도 어떻게 할 것인가?

새들도 농사지은 것이 없어 그러는 것이니 서로 나눠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억새의 머리 끝을 붙잡고 간신히 매달려있던 10월이 우리와 맺은 인연을 모두 끊고 조용히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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