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망골이여! 망골!"

큰가방 2005. 4. 17. 07:13
 

“망골이여! 망골!”


4월의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찾아온 봄의 화신은 갖가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더니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가 우리를 바라보고 활짝 웃고 있습니다. 오늘도 노란 개나리 빨간 진달래 어른의 주먹만한 하얀 꽃을 피워내는 백목련의 자태를 바라봅니다. 전남 보성 회천면으로 향하는 도로의 곳곳에는 하얗고 아름다운 왕 벚나무의 꽃잎들이 소담스럽고 환하게 피어나 약 2km의 긴 터널을 만들어 놓고 오가는 길손들을 활짝 웃으며 반겨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얀 벚꽃 잎은 바람이 불어오면서


한잎 두잎 바람결에 우수수 쏟아지더니 도로의 곳곳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마치 한 겨울에 눈이 날리듯 도로의 곳곳을 누비고 다녀 다시 한겨울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한가로운 시골의 들판 지난번 파종한 감자들이 이미 뿌리를 내렸다는 듯 굵은 싹들이 우렁차게 하늘을 향하여 자라나고 있습니다. 들판의 곳곳에 피어있는 이름모를 잡초들의 조그만 꽃들과 이미 무성해 질대로 무성해진 잡초들 사이에 숨어 사랑을 속삭이던 산비둘기 두 마리가 시골마을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는


저의 빨간 오토바이 소리에 놀랐는지 갑자기 하늘을 향하여 높이 솟아오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 잠시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산비둘기를 향하여“산비둘기야! 미안하다! 내가 너희들이 데이트를 하는 줄 어떻게 알았겠니? 그럴 줄 알았으면 천천히 지나가야하는데!” “괜찮아요! 아저씨! 우리는 잠시 마실을 나왔을 뿐이에요!”하는 듯 하늘을 빙 한바퀴 돌더니 깊은 숲 속으로 날아갑니다. “아~아!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찾아와 천천히 초여름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며 열심히 달려 도착 한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천포리 화동마을입니다. 화동마을의 첫 번째 골목길 중간쯤에 있는 박인순 할머니 댁에 화장지 상자 두개를 합쳐 놓은 크기 정도의 조그만 소포를 배달하려고 할머니 댁 대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봄이면 시골마을은 농사철이 시작되기 때문에 모두 논이나 밭에 나가 일을 하시기 때문에 사람 만나기가 마치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이 듭니다. “가만있자~아! 이제 어떻게 하지?


아까 우체국에서 할머니께 전화했을 때는 집에서 기다리신다고 했는데! 그새 밭으로 일을 나가셨나?”하며 소포에 적혀있는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봅니다. “할머니! 저 우체국 집배원이에요! 아까 제가 우체국에서 할머니께 전화를 했을 때는 집에서 기다리신다고 하셨는데 할머니 댁에 와보니 대문이 잠겨있네요! 지금 어디 계세요?” “으~응! 누구라고? 우체부 아저씨라고? 나 지금 만곤에 있어!” “할머니! 어디계신다고요? 만고에 계신다고요? 만고가 어딘데요?”

 




“아! 비닐하우스 뜯어 내불고 다시 지을라고 한데 안 있어? 내가 지금 여가 있단께!” “할머니! 저는 만고를 잘 모르거든요!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어디 한 두 군데인가요? 그런데 만고를 어떻게 찾아요! 할머니에게 소포가 왔는데 품명이 청첩장이라고 써있네요! 어떻게 하지요?” “아! 지금 내가 만곤에 있단께! 만곤이여! 만고!” “할머니~이! 지금 할머니 계신 곳이 무슨 마을이에요?” “여가 동네가 아니고! 만곤이여! 만곤! 그랑께 이리 갖다 줘!”


“할머니! 소리를 크게 지르지 마시고요! 천천히 차근차근 말씀하세요! 할머니가 소리를 크게 지르시니까 제가 할머니 말씀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아시겠어요?” “뭐시라고? 잘 안 들린다고? 아~아! 그랑께! 내가 지금 만곤에 있단께~에! 그랑께 소포는 대문 밑에 그냥 끼워 놓고 가~아! 알았제?” “할머니! 소포가 대문 밑에 끼워놓을 정도로 조그만 한 게 아니거든요! 그냥 대문 너머로 던져 놓을까요?” “아니여! 그라문 안되야! 그랑께 대문 밑에 찡게 놓든가 아니문


약방에 맡겨 놔~아! 알았제?” “할머니! 다시 한번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할머니께서 전화에 자꾸 소리를 크게 지르시니까 제가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겠어요. 소리를 지르지 마시고 천천히 말씀하세요! 지금 할머니께서 만곤에 계시니까 소포를 약방에 갖다놓으라 그 말씀이세요?” “아니여! 내가 지금 있는 데가 망골이여! 망골! 그랑께 망골로 오지 말고 약방에 갖다 놔! 알았제?” “할머니! 그러면 어디 약방으로 소포를 갖다놓을까요? 저기 율포에 있는 약방 말씀이세요?”


“아! 율포 말고 묵산에 있는 약방 안 있어? 그리 갖다 놔~아! 그라문 이따 내가 집이 가면서 찾아 갈랑께! 알았어?” “할머니! 그러니까 지금 할머니께서는 망골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 소포는 묵산에 있는 약방에 보관해 놓으면 이따 집에 가실 때 찾아가신다 그 말씀이지요?” “이~잉! 맞었어! 그랑께 묵산 약방에 매껴놔! 알았제?” “할머니! 이제 말씀을 천천히 하시니까 전화 소리가 잘 들리네요! 그런데 왜 아까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셨어요?” “첨에 전화를 받었는디! 소리가 잘 안 들리데!


그라고 여그서 기계가 돌아간께 전화소리가 잘 안 들려 그래서 내말도 잘 안 들린다냐? 어찬다냐? 하고 소리를 크게 질럿제!” “예~에! 그러셨어요? 그러면 할머니! 소포는 묵산 마을 약방에 보관해 놓으라 그 말씀이지요?” “그래! 그라문 수고하씨요! 잉!”하며 전화는 끊겼습니다. 제가 전화를 사용하다 보면 제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상대편에서는 더 잘 안 들린다고 하네요! 오늘 할머니의 경우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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