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기다리는 마음

큰가방 2005. 12. 18. 13:36
 

기다리는 마음


12월의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하얀 눈과 강한 바람과 더욱 차가운 추위를 몰고 오더니 우리 곁을 떠나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행복을 배달하러 시골마을을 향하여 우체국 문을 천천히 나섭니다. 언제보아도 늘 다정하게 보이던 길가의 가로수들은 어젯밤 불어온 차갑고도 매서운 바람에 밤새 시달렸는지 오늘따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시골들판 쪽파 밭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차가운 겨울추위를 무릅쓰고


막바지 쪽파 수확이 한창입니다. 시골들판 한쪽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양지쪽 보리밭에서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산비둘기 몇 마리가 먹이를 찾으며‘구! 구! 구!’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가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에 놀랐는지 갑자기 ‘푸드득’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멀리 날아갑니다. 저는 멀리 날아가는 산비둘기를 잠시 바라보다‘겨울이면 아무도 찾지 않아 늘 쓸쓸하던 들판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들이 있었구나!’하는 것을 느끼며 도착한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해경마을입니다. 그리고 해경마을 첫 번째 집으로 들어가 “할머니~이! 저 왔어요. 집에 계세요?”하고 할머니를 부릅니다. “누구여? 날씨도 이라고 추운디 누가 왔어?”하시며 방문을 여시는 할머니께 “할머니 저에요! 집배원이에요!”하였더니 “오~오! 우체부 아제가 왔구만!”하시며 반갑게 웃으십니다. “할머니 오늘도 성민이 에게 등기편지가 왔네요.” “으디서 등기가 왔어? 보나마나 또 돈 갚으란 등기 것 제 잉?” “예~에! 그런 것 같아요 할머니!”


“아이고! 그나저나 성민이 이것은 으디서 밥이나 묵고 살고 있는가? 어쩐가? 원! 뭔 소식이 있어야제~에!”하시며 할머니의 눈가에 가늘게 눈물이 맺히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성민이 소식은 없어요?” “금메! 아직도 뭔 소식이 없단께! 혹시 전화라도 올란다냐? 어쩐다냐? 하고 만날 기달려도 전화도 없고 편지도 없고 그란께! 그래도 맘이 착한 애긴께(아기니까) 으디서 꼭 잘살고 있으껏이여!” “할머니께서도 성민이 때문에 힘드시겠네요?” “늙은이가 힘이 들문 얼마나 들것어? 성민이가 더 힘 들제! 그래도 손지(손자)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라고 생각하요!”하시며 이제는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22~3년 전으로 돌아갑니다. 성민이 부모님은 비록 가난하였지만 마을에서도 소문난 금슬 좋은 부부였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성민이 아버지를 만나면 “어이! 날씨가 덥고 그러니까 이리와 시원한 냉수 한 그릇 마시고 좀 쉬었다 가~아!”하시며 우편물을 배달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지나가는 저에게 값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시원한 냉수 한 그릇을 권하며 다정하게 손을 꼭 붙잡던 누구에게나 살갑게 대하던 상냥하셨던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무척 부지런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가난을 이겨보려고 그야말로 억척같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한 덕분에 어느 정도 기반을 잡고 ‘이제 조금 살만하다!’고 하였는데 어느 날 성민이 어머니께서 버스를 타고 어디를 다녀오시다 버스가 뒤집히는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성민이 아버지께서는 그동안 멀리하였던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곁을 떠난 부인의 충격 때문에 그런 것 같았는데 그렇게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오시던 분이 갑자기 술을 가까이 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걱정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한 성민이 아버지는 좀처럼 술을 멀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성민이 아버지께서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 시외버스와 충돌하여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이제 5살 먹은 성민 이를 남겨놓고 두 분이 이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민이 할머니께서는 결코 실망하지 않고 어떻게 하던지 하나 밖에 없는 손자를 훌륭하게 키우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민이도 예쁘고 착실하게 할머니의 뜻을 잘 따라주어서 실업고등학교 자동차과를 졸업하고 정비공장에서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워 조그만 카 센터를 하나 인수하였고 성민이의 성실함과 친절함 때문에 손님들도 많아 카 센터가 번창할 즈음 예쁜 아가씨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만 그 아가씨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성민이도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는데 그때 성민이 친구가 빚보증을 서달라고 부탁을 하였다고 합니다. 마음 착한 성민 이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보증을 서 주었는데


그것이 그만 성민 이를 구렁텅이로 빠지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IMF 이후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부도를 내고 사라지고 나자 모든 빚쟁이들이 성민 이에게 달려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성민이의 카 센터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성민 이는 더욱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민이가 가방에 옷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하더니 “할머니! 더 이상 저는 여기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서울 어느 자동차 정비공장에 취직을 했거든요!


제가 가서 돈 많이 벌어 할머니를 모시러 올게요. 그동안 절대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살아 계세요! 아시겠지요? 그리고 혼자 계신다고 절대 밥 굶지 마시고요! 할머니 꼭 모시러 올게요! 우리 할머니~이!”하며 할머니를 한번 안아주더니 울면서 고향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성민이는 착한 애긴께(아기니까) 꼭 성공해서 나를 데리러 올 것이여! 우리 성민이가 나를 을마나 생각한다고! 아제도 알제~잉?” “그래요. 할머니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성민이가 나쁜 짓을 하여 빚을 진 것은 아니잖아요. 좋은 일을 하려다 그렇게 된 것이지요. 착한 사람이니까 반드시 성공하여 돌아 올 것입니다. 날씨도 추운데 어서 방에 들어가세요. 저 그만 가 볼게요!” 하며 성민이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다른 마을로 향하려는데 짙은 먹구름이 자욱한 하늘에서는 또 다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저의 우울한 마음을 알기나 하는 것처럼 부디 마음 착한 성민이가 하루 빨리 성공하여 할머니를 모시러 왔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봉강리에는 해경 마을이 없으며 성민이의 이름도 가명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여러분께서 많은 이해를 하여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12월 17일 촬영한 전남 보성 봇재의 녹차밭 설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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