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통 큰 며느리

큰가방 2004. 5. 15. 21:03

오늘은 비가 내립니다. 예년과 달리 금년에는 봄비가 자주 내려서 농사짓는 분들에게는 좋
은 일 인지는 몰라도 우편물을 배달하는 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 반가운 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비가 내리려면 밤에만 내리면 안될까? 비가 밤에만 내린다면 우리 집배원들은
참 편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군 노동면 대련리 한재 마
을입니다. 그리고 한재 마을의 가운데 쯤에 살고 계시는 박현주 씨 댁 대문 앞에 오토바이
를 세워놓고 현금이 든 봉투하나를 가지고 박현주 씨 댁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계세요? 할머니 계세요?” 하고 주인을 부릅니다. 그랬더니 “아저씨! 나 여깃어!”
하고 대답을 하시면서 박현주 씨 할머니께서 집 앞 텃밭에서 무엇인가를 심고 계시다 저를
보시더니 황급히 집으로 달려오십니다. “할머니 비가 오는데 밭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어
요?” 하고 묻자 “콩 좀 심고 있었어! 비가 온께 땅이 잘 파진께 콩 심기가 영 좋구만 그란
디 아저씨 뭣이 왔간디 주인을 찾아싸~아!” 하시기에 “할머니 서울에서 돈이 왔는데요!” 하
였더니 “응 우리 며느리가 보냈는갑구만!

 

엊저녁에 거시기 용돈 쪼간 보내주껏잉께 쓰라고 전화를 했데! 그란디 도장을 줘야 쓰제
잉?“ 하시며 주섬주섬 도장을 찾아 가지고 나오십니다. “할머니 여기 돈 삼십만원이 맞는지
한번 세어보세요!” 하면서 등기우편물 수령증에 도장을 찍으려는 순간 “아니! 으짠다고? 돈
을 삼십만원이나 보냈다고? 잉!” 하시며 할머니께서는 깜짝 놀라는 눈치입니다. “예! 할머
니! 며느리께서 돈을 삼십만원을 보내셨네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우메! 큰일났네!
잉! 큰일났어!” 하십니다.

 

“할머니 무엇이 큰일이 났어요? 며느님께서 돈을 삼십만원이나 보냈는데 큰일이 나다니요?”
하고 묻자 할머니께서는 “거시기 우리 며느리가 통이 너무 커 갖고 큰일이랑께 아니 뭔 돈
을 삼십만원이나 보내 금메~에! 돈이 으디가 있다고~오!” 하시기에 “할머니 그래도 며느님
이 할머니 생각하고 보내드리는 돈인데 돈이 너무 많다고 하시면 다음에 돈을 안 보내드리
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하였더니 “우리 며느리가 엊그저께 애기를 낳어! 그랑께 즈그들도
돈 들어가고 복잡하꺼인디 이라고 돈을 많이 보낸께 그라제~에!” 하십니다.

 

“할머니! 그래도 마음이 있으니까 이렇게 돈을 보내 드리거에요! 저녁에 아드님에게 전화하
셔서 돈 잘 받았다! 고맙다! 돈 잘 쓸란다! 하시고요 아니! 뭔 돈을 이렇게 많이 보냈냐?
하시지 마세요! 아시겠지요?” 하였더니 “아니여! 우리 며느리는 봇짱이 너머 커서 큰일이랑
께!”하시기에 “할머니! 며느님이 너무 배짱이 크면 좋은 수가 있어요!” 하였더니 할머니께
서는 “잉! 뭔 존수가 있어?” 하십니다. “할머니 아드님에게 전화를 하셔서요 며느리가 배짱
이 너무 커서 못쓰것다 그랑께 며느리를 쫓아내라! 하세요!”

 

하였더니 갑자기 할머니께서는 눈이 동그랗게 변하시더니 “아니 뭣이 으짠다고? 우리 며느
리를 쫓아내라고 전화를 하라고 그라문 안되야!” 하십니다. “할머니 며느님이 너무 통이 크
고 배짱이 커서 큰 일이라면서요! 그러니까 며느님을 쫓아내라고 하시면 되지요!” 하였더니
“아니 무단히 이쁜 우리 며느리를 으째서 쫓아내라고 그래싸~아! 우리한테 을마나 잘 한다
고~오! 그랑께 나는 쫓아내란 말은 절대로 못해!” 하십니다. 할머니의 마음속으로는 며느리
가 무척 고맙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하지만

 

차마 저에게 며느리 자랑을 하시지는 못하고 그저 통이 크고 배짱 큰 며느리로 표현을 하시
며 은연중 며느리 자랑을 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냥 할머니께 농
담으로 며느님을 쫓아내라고 한마디하였는데 할머니께서는 저의 말이 무척 서운하신가 봅니
다. “할머니! 할머니께서 며느님을 무척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 저도 잘 알아요! 언제나 며
느님하고 사이좋게 지내세요!”

 

^^* 제가 꼬리말을 닫아놓았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방명록으로 오셔서 흔적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꼬리말을 닫아놓아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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