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래 밭!”
전국적으로 한파(寒波)가 예상된다는 기상청의 예보 때문인지 오늘 아침 출근길부터 강하게 불어오기 시작하던 바람은 내가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가득 싣고 우체국 문을 나설 무렵부터는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릴 듯이 더욱 강한 기세로 불어대기 시작하여 시골마을을 향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달려가는 나는 강한 바람 때문에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몇 번을 비틀거리면서 겨우 첫 번째 마을에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이고! 힘들다! 그러나 오늘 눈이 함께 내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만약 많은 눈이 내리면서 바람까지 강하게 불었다면?”하는 생각과 함께 회심을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두곡마을에 도착하였고 어제 수취인이 집을 비우는 바람에 배달하지 못한 등기우편물을 배달하려고 김선식 씨 댁 마당으로 들어가 오토바이 클랙슨을 “빵! 빵!”울렸더니 마당 한쪽 조그만 비닐하우스의 문이 열리면서 할머니께서 고개를 내밀고
“아제! 어지께는 우리 집에 무슨 등기편지가 왔어?”하고 물으셨다. “서울 김영식 씨께서 등기편지를 보내셨네요,” “그라문 도장이 있어야 되까?” “아니요! 도장은 없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혹시 김길식 씨라고 아시겠어요?” “김길식 씨는 우리 큰집 시아제(시동생)여 그란디 으째 물어봐?” “서울 김영식 씨께서 어르신과 김길식 씨에게 등기편지를 보냈거든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김길식는 어디서 살고 계세요?” “지금 부산에서 살고 있어!” “그럼 김길식 씨 편지를 할머니 드려도 괜찮을까 모르겠네요?”
“금메! 나는 잘 모르것는디 받어야 되까 말어야 되까?” “할머니 그럼 어르신은 지금 어디계세요?” “우리 영감? 지금 이 아래 밭에서 감자 씨 심고 있어!”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감자 씨를 심고 계신단 말씀이세요?” “아이고! 뭔 날씨가 춥다고 그래! 그라고 동네 사람들이 날 받어갖고 품앗이해서 감자 씨를 심고 있응께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날짜가 돌아오문 할 수 없이 심어야 되야!” “그래요! 그럼 이 편지는 어떻게 하지요?” “그라문 내가 얼른 가서 우리 영감 오라고 하께!”
“예! 그럼 그렇게 하세요! 저는 그동안 이 마을 편지를 배달하고 올게요,”하고 할머니 댁을 나와 두곡마을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고 다시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할머니는 돌아오시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오시겠지!”하며 마당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할머니께서는 돌아오실 기척이 없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여? 왜 이렇게 할머니가 늦지? 바람은 더 강하게 불면서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는데! 가만있자!
할머니 밭이 이 아래쪽 어디에 있는 밭이라고 했는데!”하며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집 위 아래쪽 밭을 모두 쳐다보았지만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할머니께서 분명히 이 아래 쪽 밭이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하는 생각을 하다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아니? 할머니는 어디로 가신거야?”그런데 잠시 후 할머니께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헐레벌떡 뛰어오시더니 “지금 우리 영감이 오고 있어!”하신다.
“할머니 밭이 아래쪽이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이 보이지 않네요! 밭은 어디에 있어요?”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우리 밭? 우리 밭은 쩌어기 있어!”하며 가르친 곳은 왕복 1km도 훨씬 더 될 것 같은 멀리 있는 밭이었다. “저렇게 멀리 있는 밭이면 저에게 말씀을 하셔야지요. 그럼 제가 오토바이로 달려가면 할머니께서도 고생을 안 하시잖아요!” “누가 그런 것을 몰라서 그랬간디!” “그럼 왜? 그러셨어요? 혹시라도 그 동안 영감님이 보고 싶어 뛰어가신 것은 아니지요?”
“날씨가 이라고 춥고 그란디 우리 밭 쩌기 있다고 갈쳐주면 아제가 또 고생할 것이 아니여? 그래서 내가 갖다 온 것이여!”하신다. “아! 그렇구나! 할머니께서는 조금이라도 내가 고생하지 않도록 이토록 추운 날씨에 저 먼 거리를 다녀오신 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잠시 동안이라도 할머니를 원망하였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입춘이 지나면서 나무에서는 어느새 꽃눈이 올라오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