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줄서~ 주~울!"

큰가방 2007. 7. 1. 10:19
 

“줄서! 주~울!”


장마철에 접어들면서 이삼일 동안 계속해서 장맛비는 오락가락하였으나 지금까지 메말랐던 대지를 촉촉이 적셔줄 만큼 많은 비는 내리지 않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먹구름만 가득한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러 시골마을로 달려가는 길 옆 콩밭에는 어제 내린 단비로 많은 새싹들이 머리를 내밀고 지나가는 나에게 “아저씨! 안녕하세요?”하며 반가운 인사를 하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콩밭을 한번  빙 둘러보더니 아무 말 없이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입장은 비가 내리면 귀찮지만 농사짓는 농민들은 아직도 많은 비가 내려야 할 것 같은데!”하는 생각을 하며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농소마을에 도착하여 우편물을 배달하며 회관 앞을 지나가려는데 회관 앞 계단에 할머니 다섯 분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시다 “아제! 우리 집 편지통에 이것이 들었는디 뭣하란 것이여?”하며 한손에 자동차세 고지서를 들고 나를 부르는 할머니가 계셨다. “이것은 자동차세 고지서인데요.” “자동차세? 우리 집은 자동차가 없는디 으째 고지서가 나왔으까?”


“혹시 아드님이 자가용 가지고 있지 않나요?” “자가용이 있기는 있어!” “그 차 세금이 나왔나 보네요!” “그라문 우리 아들이 타고 댕기는 자가용 세금 내라고 나왔는 갑구만 그랑께 자가용도 자동차로 들어가는 모양이네!” “자가용이 자동차가 아니면 무엇이 자동차겠어요?” “나는 자가용은 자동차가 아니고 트럭이나 버스같이 큰 차만 자동차인지 알았제~에!” “하! 하! 하! 그러셨어요! 그런데 아무리 작은 차(車)라도 차는 모두 자동차로 분류되는 거예요,”


“알았어! 나는 그 세금인지는 몰르고 다른 것인지 알고 깜짝 놀랬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할머니 한 분이 “아제! 이따 우체국에 들어 가시제?”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아니~이! 다른 것이 아니고 요것 잔 갖다가 바쳐 줘!” “유선방송 시청료 말씀이지요? 요금은 오천 오백 원이네요!” “나도 알아! 내가 아무리 늙었다고 그것도 모르간디!”하시며 천 원짜리 지폐 다섯 장과 백 원짜리 동전 다섯 개를 내놓으셨다. “할머니! 영수증 끓어드릴게요.”하며


회관 앞에 앉아계신 할머니들께 “유선방송 시청료 납부하실 분 빨리 빨리 가져오세요! 시간되면 나는 떠납니다. 떠나고 난 뒤 후회하지 말고 빨리 가져오세요!”하였더니 “아제! 여가 쪼금 지달리고 있어! 잉! 나~아! 금방 갖고께!”하시며 할머니들께서는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시더니 “아제 그란디 으뜬 것이 유성방송이여?”하며 손에 공과금 고지서를 한주먹이나 쥐고 오신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 지난번에 필요 없는 것은 모두 불에 태워버리라고 했는데 아직도 태우지 않고 그걸 가지고 계셨어요?”


“아니~이! 내가 불에 태울라고 했는디 으뜬 것이 필요한 것인지 아무리 봐도 몰르것데! 그래서 그냥 갖고 왔어!” “그러면 제가 필요 없는 것은 모두 찢어버릴게요! 그래도 괜찮겠지요?”하면서 납기일이 지난 전화, 전기, 건강보험 자동납부 고지서는 찢어버리고 “할머니! 그런데 유선방송 시청료가 이번에는 3개월분 만 6천 5백 원이 한꺼번에 나왔네요!” “아니 어지께 내가 우체국에서 한 달치를 내고 왔는디!”


“어제요? 어제는 일요일인데 어떻게 시청료를 냈다는 말씀이세요?” “그라문 그저께 냈는가?” “그제요? 그제 어디서 내셨어요?” “와따~아! 으서 냈으문 뭣할라고 그래 그냥 한 달치만 빼고 받으문 되제!” “그런데 공과금은 고지서에 청구된 금액을 모두 다 받아야지 제 맘대로 한 달분을 빼고 받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으째서 안 되야? 내가 한 달치를 냈단께!” “그래도 제 마음대로 요금을 깎아 받을 수 없으니까 삼개월분 모두 납부하시든 아니면 다음달에 내시든 하세요!”


“그라문 할 수 없구만 우선 석달치 내야제!”하시며 조그만 손지갑에서 돈을 꺼내고 계시는데 회관 앞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들께서 옆으로 다가오시더니 “뭣이 틀렸어?” “뭣이 안 맞은 가?” “우체부 아제 말대로 하문 손해 없응께 시킨 대로 해!”하며 한마디씩 거드시는데 그때 갑자기 건너편 정자(亭子)에 앉아계시던 영감님께서 “줄서! 주~울! 바쁘도 안한 노인들이 뭣이 바뻐서 (요금을) 서로 빨리 낼라고 야단이여! 야단이!”


*빨간 망사 자루 속의 양파들이 정다워보였습니다.  

*어느새 도라지꽃이 만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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