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잃어버린 소포

큰가방 2004. 12. 25. 20:41
 

잃어버린 소포

2000.10.19


길가의 가로수가 차츰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외로이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어쩐지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가을입니다. "어이 어이 나 좀 보고가아!" 뒤에서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소포를 받지 못하였다고 하시던 그 아저씨입니다. "요번 날은 미안했어! 소포를 내가 그 날 술에 취해 갖고 장롱 속에다 넣어두고 깜박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자네가 이해를 좀 하소! 내가 자네 만나면 줄라고 자네가 준 돈 그대로 지금 갖고 왔네 미안하시


나도 자네가 알다시피 절대로 거짓말은 안하는 사람이란 말이시 그란디 그만 실수를 해서 미안하시 자네가 이해 좀 하소! 잉!" 하시며 지난번 제가 잃어버린 소포를 변상해 드린다고 드렸던 돈을 다시 내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난주 목요일입니다. 요즘은 농촌이 바쁘다 보니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제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바쁜 농번기 때 소포나 등기우편물을 주민들이 쉽고 편하게 받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여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여 각 가정에 대문이 닫아 진 집에는 어쩔 수 없지만 


대문이 잠겨있지 않은 댁에는 소포같이 부피가 크고 눈에 잘 뜨이는 우편물만 방안에 넣어두고 오후에 우편물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전화로 확인을 하여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약 3개월 간 시험기간을 거쳐서 이제도가 잘 정착이 된다면 옆의 동료들에게도 권장을 하여 보기로 하고 시험을 하여보았습니다. 그리고 약 2개월 동안 아무 사고도 없었고 주민들의 호응도 아주 좋아 마음속으로 잘하면 이런 제도는 혹시 문제점이 있다면 보안하여 정착시켜도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문제가 터지고 만 것입니다. 지난 12일 강원 홍천우체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5일전에 노동면 감정리 김경일 씨 댁에 소포를 보냈으나 아직까지 도착이 안 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그래서 “그날 제가 배달을 했는데 사람이 없고 해서 그냥 방안에 놓아두었습니다!” 라고 했더니 그 소포가 담배가 50갑이 들었는데 없어졌으니 변상을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김경일 씨를 만나서 "아저씨! 대단히 죄송합니다! 기왕이면 따님께서 보내주신 담배를 피우시면 좋을 텐데 유감스럽게 담배가 없어졌으니


제가 변상 해드리겠습니다!" 하고는 담배 값을 돈으로 계산하여 드리면서 기왕에 이렇게 된 일 아저씨 취향에 맞는 담배를 사서 피우십시오!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김경일 씨 댁 문을 나오는데 기분이 착잡하였습니다. 모처럼의 좋은 제도라면 이런 어려운 문제가 없으면 좋을 텐데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할 일이 생겼다는 게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하는 마음과 함께 강원도 홍천우체국 직원들에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성이라는 곳은 도둑이 많이 사는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아저씨께서 "미안하시!" 를 연발하면서 돈을 돌려주시는 겁니다. "내가 술이 취해 갖고 기억을 못했어! 미안하시!" 하시는 아저씨를 보면서 저는 무어라 할말을 잃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없더라도 우리의 규정대로 우편물 도착통지서를 써두고 이틀 동안 가지고 다니다가 배달하지 못하면 우체국에 보관하여야겠다!" 라는 저의 생각이 틀린 것일까요? 아직은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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