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어머니의 마음

큰가방 2005. 1. 22. 18:00
 

어머니의 마음


“계십니까? 계세요?”보성읍 용문리 성두마을의 김성남 씨 댁 군(軍)에서 도착한 장정(壯丁)소포하나를 배달하려고 주인을 불러보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이상하다! 방에 TV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사람이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하고 소포를 마루에 놓아두고 막 대문 밖으로 나오려는데 “아저씨! 우리 아들 옷 왔지요?”하며 김성남 씨 부인이 어디를 다녀오는지 대문에 들어서며 저에게 묻습니다. “예! 옷이 왔네요! 아드님 옷이 와서 서운하시겠어요?”


“아니에요! 남자는 누구든 다 다녀오는 곳인데!” 하며 얼굴에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합니다. “아드님은 착실하고 야무지니까 잘 적응하고 이제 씩씩한 군인이 되어 돌아올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은 안하지만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요. 아직 고생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아인데 어떻게 잘하고 있는지!”하며 무척 근심스러운 표정입니다. “군대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지금은 옛날하고 달라서 대우도 괜찮다고 하데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예! 알고 있어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하는 인사를 나누고 김성남 씨 댁을 나오다 문득 30여 년 전 제가 처음 집배원을 시작할 무렵의 일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처음 집배원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장정소포가 일반 소포가 아닌 등기 소포이기 때문에 도장을 받아야만 했던 시절인데 보성읍 봉산리 오서 마을에 장정소포가 하나 도착이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 빨간 자전거에 장정소포를 싣고 가다 오서 마을입구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소포를 들고 수취인 댁에 들어가


“여기 소포가 왔는데 도장을 좀 찍어주세요!”하였더니 아주머니께서 나오시더니 아주 힘없는 목소리로 “우리 아들한테 옷이 왔제라? 도장 찍어주라고? 잉! 알았소!”하시며 소포를 받아들더니 들릴 듯 말 듯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마루에 소포를 놓아두고는 “아이고~오! 아이고~오!”하고 점점 큰소리로 울기 시작합니다. “아주머니! 도장을 좀 찍어주시라니까요!” “잉? 도장? 알았어!”하고 방으로 들어가 도장을 찾는 듯 하더니 “아니 도장이 으디 가고 읍다냐?”


하시다 다시 마루에 있는 소포를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소포를 부둥켜안고 “아이고~오! 불쌍한 내 아들이 군대가서 을마나 고생을 해싼다냐? 아이고~오! 아이고~오!”하시며 대성통곡을 하시는 겁니다. 그때 저의 마음은 아주머니를 어떻게든 위로를 해서 진정을 시켜드려야 하겠는데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옆에 서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어찌나 슬피 우시는지 저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참동안을 같이 울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진정을 하셨는지


“총각 미안해! 내가 즈그 아부지도 없이 자식을 키웠는디 군대갈 때까지 농사일에다 뭣에다 고생만 그라고 시켜도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일을 했는디 따땃한 쌀밥 한번 못 먹여서 보내고 난께 이라고 서럽네! 이라고 가만히 있어도 날씨가 덥고 그란디 군대를 가서 을마나 고생을 한가 몰르것네!”하시며 도장을 찾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 자식(子息)을 둔 모든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군에서 보내온 장정소포를 받아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어머니는 안 계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눈물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굳건히 지켜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이제 신병으로 입대한 모든 군인들이 건강한 몸으로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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