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쥐새끼 한 마리

큰가방 2010. 3. 20. 20:35

 

쥐새끼 한 마리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 길. 경칩(驚蟄)과 함께 찾아온 강한 바람과 많은 눈을 동반한 꽃 샘 추위가 물러가더니 밝고 따스한 햇볕이 온 누리를 비추면서 시골길 양지바른 언덕에서 피어나는 이름을 알 수없는 예쁜 잉크 색 조그만 꽃들 사이로 봄은 언제 찾아왔는지 소리 없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데 시골마을 입구에 서있는 매화나무에서는 어느새 무수히 피어난 하얀 꽃들이 환한 웃음을 머금고 지나가는 길손에게 봄 인사가 한창이었다.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모원마을에 접어들었을 때는 어느덧 오후 2시가 넘어서고 있었는데 기다란 골목길로 접어들어 수취함에 우편물을 넣고 있을 때 마을 영감님 한분이 나를 보고 "어~이! 바쁘제만 이리와 이것 잔 들어주고 가소!" 하고 부르셨다. "어르신! 무거운 물건이 있나요?" 하고 마당으로 들어섰더니 방에 있는 세간을 모두 꺼내놓고 있는 중이었다. "어르신! 어디로 이사하려고 그러세요? 왜 살림살이를 모두 꺼내 놓으셨어요?" "아이고! 내 나이 인자 80살이 가까운디 이사는 무슨 이사를 한단가?

 

그냥 죽을 때까지 여그서 살아야제! 그란디 요새 방구석에 쥐새끼가 들어와서 할 수없이 방 청소도 할 겸해서 이라고 있네!" "방에 쥐가 들어왔어요?" "안방 말고 이짝 작은방 안 있는가? 저 방에 이상하게 쥐똥이 보이드란 마시! 그래서 그저 그란갑다! 했는디 며칠 전에 자네가 우리 애기들이 보낸 인삼(人蔘)이라고 안 갖고 왔는가? 그것을 저쪽 방에다 놔 뒀는디 쥐새끼들이 다 갈가 묵어 부렇단 말이시! 을마나 화가 나든지!" "그러면 쥐약을 놔 보시지 그러셨어요?"

 

"그란디 요새 쥐들은 약어 갖고 쥐약을 놔도 소용이 없드란 마시!" "그러면 끈끈이는 놔 보셨어요? 끈끈이에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참기름 바른 먹이를 놔두면 잘 잡히던데요!" "내가 끈끈는 안 놔 봤것는가? 그란디 소용이 업드란께! 그래서 할 수없이 살림살이를 다 끄집어내고 쥐를 잡아야 쓰것드란 말이시!" "방에 쥐가 들어오면 정말 귀찮던데 나중에 세간 정리하실 때도 잘 보셔야 될 거예요! 옛날에 저의 집 방에도 쥐가 들어와 살림살이를 다 끄집어내고 정리를 했는데도 또 쥐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방 어두운 곳을 플래시를 비추며 자세히 살펴보니 냉장고와 벽 사이에 조그만 공간 있지 않습니까? 사람 손도 들어가지 않을 공간에 쥐 두 마리가 위아래 나란히 붙어있는데 한 마리를 꼬챙이로 찍은 다음 집게로 잡아냈는데 한 마리는 마치 무엇이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쥐가 정말 영악한 동물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란께 말이시! 그란디 자네가 우리 집 인삼 배달하러 왔을 때 말이여! 그때 내가 몇 뿌리 준다고 안 하든가?"

 

"그러셨지요! 그런데 그때 자녀분이 부모님 생각하고 보낸 귀한 인삼이라고 제가 싫다고 했는데요!" "그때 내가 준다고 했을 때 자네가 몇 뿌리라도 가져갔으문 그래도 사람이 비싼 인삼 맛이라도 봤응께 쪼끔이라도 덜 서운 했으껏인디 자네가 그라문 안 된다고 펄쩍 뛰는 바람에 그것도 이방에 놔 뒀는디 사람은 맛도 못보고 쥐새끼가 다 갈가 묵어 부렇는디 내가 화가 안 나것는가?" "정말 그러셨겠네요! 그러면 어르신! 제가 무엇을 도와드려야 하나요?" "방에 장농만 마당으로 들어내문 되꺼이시!" 하셔서

 

영감님과 힘을 합쳐 커다란 장롱을 들어냈는데 여전히 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놈의 쥐새끼가 우드로 숨었간디 이라고 꼴이 안 보이까?" 하시는 영감님의 푸념에 "어르신! 기왕 살림살이 꺼낸 김에 마지막 남은 저 책상까지 꺼내면 어떨까요?" "그라고 본께 끄집어 낼 것이 아직도 남어 갖고 있네!" 하고 책상을 들어내는 순간 갑자기 '후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어린이 주먹만 한 쥐 한 마리가 쏜살 같이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아무리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찾아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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