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니고 수표여?”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달려가는 길.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기다란 농로 길을 달려가는데 어제보다 더 튼실하게 알이 영글어가는 청보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고개를 흔들며 “아저씨! 안녕하세요?”인사를 하고 있다. “내가 어릴 적 이때쯤이면 보릿고개라 먹을 것이 귀하여 친구 몇 명과 보리를 꺾어 언덕 밑에 불을 피우고 구워 손으로 비벼 입안에 털어 넣으면 고소하면서도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고 입 주위가 온통 검정이 묻어 시꺼멓게 변하면
서로를 바라보며‘낄! 낄!’거리며 웃었던 개구쟁이 어린 시절이 생각나 문득 그때가 그리워진다.”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군학마을 도로 옆집에 등기편지 한통을 배달하려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께서 토방에 물을 뿌리고 청소를 하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웬 대청소를 하고 계세요?” “응! 편지 아저씨구만! 요새 황사가 오고 꽃가리가 날려싼께 토방이 더루와서 못 보것어! 그란디 우리 손지들이 와 있는디 애기들이 맨발로 마당을 자꼬 돌아댕겨 싼께 청소를 안하문 안되것드란께!”
“요즘 농번기라 바쁘실 텐데 손자까지 봐주고 계세요?” “으짜껏이여 애기들이 바쁘다고 나한테 손지들을 띠어놓고 간디 도로 가라고도 못하고 할 수없이 내가 데꼬있제!” “그런데 오늘은 경기도 용인 김인혜씨가 등기를 보냈네요.” “그래~에! 어저께 돈 보낸다고 전화했드만 그것인갑구만!”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저 그만 가 볼게요!” 하고 막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저씨! 으째 봉투에 돈은 안 들고 수표만 들어갖고 있어?” “그것은 돈을 보내신 분이 현금으로 보내지 않아서 그래요.”
“그라문 나는 으짜 껏이여? 요새 우리 손지들 셋이나 보니라고 꼼짝을 못하고 있는디 돈은 우추고 찾아다 쓰껏이여?” “그러시면 돈은 제가 찾아서 내일 갖다 드릴게요. 그런데 수표에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되니까 주민등록증을 조금 보여주시겠어요?” “그냥 갖고 가서 찾으문 되제 으째 주민등록증을 내노라 그래싸? 우리 딸집이다 놔두고 왔는디!” “만약에 할머니께서 수표를 잃어버리셨다면 이것을 주운 사람 아무나 찾아 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분을
확인하려고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하거든요. 그러면 건강보험 카드라도 찾아보세요!” “내가 그것을 으추고 찾으껏이여? 그냥 갖고 가서 찾아갖고 와!”하며 노발대발 야단이시다. “수표에 주민등록번호를 적지 않으면 돈을 찾을 수가 없어요.” “으째 안된다고 그래 싸? 다른 사람은 암말도 안하고 그냥 찾아다 주드만!”하는 순간 현관문이‘드르득’열리면서 다섯 살쯤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할머니! 뭐하고 계세요?”하며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내밀자 “너는 뭣할라고 할메를 불러쌓냐?
안 그래도 화가 나서 죽것는디 얼렁 문 닫고 들어가!”하고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란 손녀 얼른 문을‘쾅!’소리가 나게 닫고 들어가 버린다. “할머니!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아저씨도 생각해 보씨요! 어지께 돈을 보낼란다고 전화가 왔길래‘내가 요새 손지 셋을 보니라고 꼼짝을 못한께 잊어불지 말고 꼭 돈으로 보내라! 잉!’신신당부를 했는디 돈은 안보내고 수표를 보냈는디 부에가 안 나것어? 그라고 농협 수표로 보냈다문 여기 가까운데 있응께 찾기라도 쉬운디 돈 찾을라고
우체국까지 갈라문 한나잘을 걸리껏인디 우추고 내가 찾아오껏이요? 그래서 내가 화를 낸 것이제!” “그런데 돈을 보내신 분이 이미 수표로 보냈고 아무리 우체국 멀리 있더라도 제가 돈을 찾아다 준다고 했는데도 저에게 그렇게 화를 내시면 되겠습니까? 화만 내지 마시고 건강보험 카드라도 찾아보세요!”하였더니 그때서야 가방을 가져와 주섬주섬 건강보험 카드를 꺼내면서 “미안하요! 내가 수표를 보고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랬소! 아저씨 한테 화 낸 것이 아닌께 이해 하씨요! 잉!”
"어르신 뭐하세요?" "날이 징하게 떠운께 이른 것들도 물이 묵고 싶은가 시들시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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