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무심한 잠

큰가방 2011. 5. 14. 19:14

 

무심한 잠

 

계절의 여왕 5월이 시작되면서 시골 들녘 넓은 논에서는 커다란 트랙터가 모를 심기위한 로터리를 치느라 힘찬 엔진소리가 요란하고 마을에서 마을로 길게 이어지는 한적한 농로 길 옆에 누군가 심어놓은 철쭉나무에서는 빨간 꽃이 예쁘게 피어올라 오가는 길손을 향하여 환한 미소를 보내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짝을 이룬 산비둘기 두 마리가 모이를 찾아 여기저기 분주히 돌아다니다 내가 타고 가는 빨간 오토바이 소리에 놀랐는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러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 길.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객산마을 마지막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께서 잔디가 깔린 마당에 쓰려져 계신 듯 보여 깜짝 놀라 빨리 오토바이를 세우고 곁으로 다가서며 할머니! 정신 차리세요!”하고 큰소리로 외쳤더니 벌떡 일어나신 할머니.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졸린 눈으로누구여? ~! 우체국 아저씨구나! 그란디 으째서 그라고 불러싸~?”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왜 마당에 누워 계세요?”

 

아니 그냥 날도 따땃하고 그랑께 마당에 그냥 앙거있어!” “제가 보기에는 영락없이 쓰러져 계신 것 같아 깜짝 놀랐어요, 어디 몸이 편찮은 곳이라도 있으세요?”물었더니 미안한 듯 미소를 지으며 아픈데는 읍고 그냥 쬐간 앙거 갖고 있었는디 잠이 들었는 갑단께! 그란디 오늘은 뭣을 갖고 왔어?”하셔서 오토바이 적재함에서 조그만 상자 하나를 꺼내드리며약이 왔나 봐요.” “그새 내 약 올 때가 되얐으까? 먼자 약도 안직은 마니 남어 갖고 있는디 또 약을 보냈는 갑네!

 

쩌그 물래다가(마루에) 그냥 땡겨놔!”하더니 다시 마당에 드러눕는다. “할머니! 왜 방을 놔두고 마당에 누워 계세요? 방에 불을 넣지 않아 추워서 그러시나요?” “우추고 방에 불을 안 때고 살것서? 방에다 불을 때기는 때제! 그란디 오늘은 날도 따습고 그랑께 여가 잔 앙거있었는디 나도 몰르게 잠이 들었는 갑구만! 잠 같이 무정한 것이 읍는갑네!” “이렇게 혼자 계시려면 적적하실 텐데 회관에 놀러 가시지 그러세요?” “요새는 밭에 꼬치 모종도 앵겨야 되고

 

논에 모도 심고 그래야 된께 회관에도 사람들이 한나도 읍어! 그란디 나 혼자 가서 크나큰 방에 불 틀어놓고 있으문 사람들이 욕 한께 오늘은 그냥 집이서 혼자 있어!” “아무리 그렇더라도 차디찬 마당에 누워계시면 건강에 해로운데 그러세요?” “아따~! 마당에 드러 누었다고 해로우문 을마나 해롭것어? 쪼깐 있다 방으로 들어가문 되제!” “요즘 시골이 바쁜 때인데 마을에 일은 하러 안 다니시나요?” “일도 인자 나이를 묵어논께 누가 안 불러서 못가! 옛날 젊었을 때는 서로 일 잔 해주라고 야단이드만 인자는

 

나도 갈 때가 다 되얏가 누가 일 해주라는 사람이 읍네! 그란디 내가 또 걸음발을 잘못한께 일을 해 주라고 해도 못가고 있어!” “그러면 혼자 계시려면 심심하실 텐데 어떻게 해요?” “혼자 있어도 심심하든 안 해! 째깐한 텃밭이라도 있응께 풀도 매고 뭣도 심고 그라문 금방 하루가 가불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누구와 말벗이 있어야 덜 심심하실 텐데 그러네요.” “그래도 할 수 읍제 으짜껏이여!” “그런데 아무리 날씨가 따뜻하더라도 이렇게 마당에 함부로 누워계시면 몸에 안 좋아요!”

 

으째 자꼬 마당에 누워있으문 안 된다고 그래싸~?” “날씨가 따뜻하더라도 마당의 잔디 아래는 땅바닥인데 아무래도 찬기가 올라오니까 몸에 마비가 올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봄에는 덜하지만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들쥐들이 옮기는 병이 있는데 그 병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마당에 누워계시려면 박스라도 깔고 누워계세요! 아시겠지요?” “우메! 그른 병도 있었든 갑네! 나는 그런 것은 생각도 안하고 그냥 따땃해서 마당에 있었는디 알았어! 꺽정하지 말어! 인자 안 드러누워있으께!”  

 

시골집 마당에는 어느새 논에 심을 어린 모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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