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형광등

큰가방 2012. 1. 24. 17:52

형광등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설날이 사흘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오늘도 주인을 찾아 밤새 달려온 택배를 배달하느라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서산에 조그맣게 걸려있던 태양은 점점 짙어가는 어둠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요즘처럼 바쁠 때는 하루해가 30분정도만 더 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혼자 중얼거리며 마지막 몇 개 남은 택배와 등기를 배달하려고 전남 보성 회천면 도강마을 세 번째 집에‘딩동!’하고 벨을 누르자

 

“누구세요?”하는 주인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택배 왔습니다.” 하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대문 앞으로 달려 나온 아주머니께서

“아이고~오! 방금 TV에서 명절 때문에 집배원 아저씨들 고생하신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이렇게 날이 저물도록 정말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부지런히 해야지요.”

 

“날씨도 춥고 그런데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시지 그러세요?” “성의는 고맙습니다만 아직 배달 할 우편물도 남아있고 또 사무실에서는 저희들이 무사히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빨리 가야 하거든요.”

“정말 그러시겠네요.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이렇게 수고만 끼쳐드려서!” “괜찮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하고는

 

건너편 집 마당으로 들어서며 “할머니 계세요?”하고 큰소리로 부르자 침침한 불빛 사이로 현관문을 열고 “누구여?”하신다. “서울에서 돈이 왔네요.” “잉? 뭐시라고 돈이 왔다고? 그란디 누구여?” “접니다. 집배원이라고요!” “잉? 누구라고?”

“저라니까요! 집배원이요!”하고 할머니 가까이 얼굴을 내밀자 깜짝 놀란 얼굴로“우메! 편지 아저씨구만! 그란디 이 밤중에 뭔 일이여?”

 

“인천의 이인숙씨가 돈을 보냈네요.” “이인숙이가 돈을 보냈다고? 우리 막둥이 며느린디 이참에는 또 못 올란갑구만! 그란디 뭣을 주라고?”

“주민등록증이 있어야겠는데요.” “주민증이 있어야 쓴다고? 그란디 내가 그것을 으따가 뒀으까?”하며 방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는 무엇을 하시는지 소식이 없다. “저 지금 바쁜데 무엇하고 계세요?” “그것을 으따 둿는가 암만 찾아도 읍단께!”

 

“지금 방에 불은 켜고 찾고 계시나요?” “아니 불을 쓰나 안쓰나 똑 같응께 그냥 찾고 있어!” “그래도 불은 켜고 찾으셔야지 컴컴한 방에서 어떻게 주민등록증을 찾겠어요?” “불을 써도 이노무 것이 왔다 갔다 하드랑께! 아저씨가 와서 한번 봐줘!”하셔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방의 전원스위치를 넣었는데 형광등 불이 들어오는가 싶더니 이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수명이 다 되었나 봐요. 새것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혹시 사다 놓으신 것 있나요?” “그것이 뭣인지를 알아서 내가 사다 노껏이여?” “방에 불이 켜지지 않으면 답답해서 어떻게 사세요?” “나 혼자 산께 주방에만 불이 들어오문 되야!”

“아무리 그렇더라도 오늘처럼 방에서 무엇이라도 찾으려면 불편하잖아요. 요즘은 제가 바쁘니까 설이 지나고 손을 좀 봐 드릴까요?”

 

“그라문 고맙제만 미안한께 그라제~에!”하시더니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났다는 듯 “참! 낼 우리 애기들이 온다 그랑께 손을 잔 보라고 해야 쓰것구만 그래도 아저씨가 고맙소! 이라고 늙은이 사는 집에 전기도 봐 준다고 그랑께! 그래서 가까운 유제(이웃)가 좋제 멀리 있는 친척은 소용이 읍다고 그란갑이여!”

 

겨울의 짧은 해는 5시 30분이 되자 서산에 걸려있었습니다.

"낼 모레가 설이라 떡을 잔 할라고 쑥을 삶았는디 그것도 인자는 심이 마니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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