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전화

큰가방 2012. 2. 12. 08:10

 

전화

정월 대보름이 가까워지면서 찾아온 매섭고도 강한 추위는 매일 기록을 갱신하면서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는데 따스한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모여 이리저리 모이 찾던 비둘기 몇 마리가 내가 타고 가는 빨간 오토바이 소리에 놀랐는지 갑자기 하늘 높이 솟아오르더니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전남 보성 회천면 양동마을 커다란 녹차 밭 아래쪽에 자리 잡은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서며 “빵! 빵!”소리를 내자 현관문을 열고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기신다.

“아이고~오! 날씨도 징하게도 춥고 그란디 고상해쌓네~에!” “그동안 잘 계셨어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지내세요? 방에 불은 따뜻하게 넣고 계시나요?”

 

“방에 불은 따땃하니 해 놓고 살제! 날씨가 이란디 방이 추우문 되것어? 그란디 아저씨는 을마나 추우까? 나는 방에 카만이 앙거있응께 괜찬한디”

“저는 괜찮아요. 지금 강원도 쪽에는 기온이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간다는데 그에 비하면 여기는 얼마나 따뜻하고 좋아요?”하며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서 제법 큰 박스 하나를 할머니 댁 현관 앞에 내려놓자

 

“이것이 뭐시여?”하고 묻는다. “서울에서 김영숙씨가 보낸 택배인데요.” “영숙이가 보냈다고? 우리 막내딸인디 뭣을 보냈으까? 엊저녁에 전화 왔을 때도 뭣 보낸단 말이 읍었는디 이상하네!”하시더니 갑자기 “아이고! 이 써글 것!”하신다.

“썩을 것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세요?”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더니

 

“엊그저께 집으로 전화가 왔어! 짐치가 다 떨어져 부러서 가질로 온다고! 그래서 ‘그라문 빈 통 잔 갖고 온나! 맨날 짐치를 갖고만 가제 그것 갖고 올지는 모르냐?’했드니 이것을 택배로 보냈구만! 써글 것이 지가 집이 옴시로 갖고 오문 아저씨들 고상도 안 시키고 그라꺼인디 으째 요새 애기들은 손 한나 까딱도 안 할라고 그래싼가 몰르것어!”

 

“할머니 그런 말씀하시면 안 돼요!” “잉! 으째서?” “택배가 있어야 집배원들이 필요하지요.” “이~잉! 그란가?”하며 잠시 웃으려는 듯 하다가 갑자기

“그란디 어저께하고 그저께는 으째 여그를 안 지나갔어?”하신다. “어제하고 그제요? 우편물이 없어서 안 지나갔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니~이! 내가 뭣을 잔 보낼라고 그저께부터 아저씨 지나가기를 아침부터 그~라고 지달려도 안 지나가고 말어불데 그라드니 어저께는 쩌그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어서 오늘은 이짝으로 올란다냐 그라고 있었는디 우추고 본께 그냥 가불데! 을마나 속이 상하든지!”하며 무척 화가 난 표정이다.

 

“무엇을 보내려고 그러셨는데요?” “우리 손지 안경을 놔두고 가서 그것을 잔 보낼라고 했는디 만날 아저씨는 못 만나갖고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보냈어!”

“집배원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것은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배달할 우편물이 없으면 이쪽으로 당연이 안 오겠지요?

 

앞으로는 혹시 무엇을 보내실 게 있으면 우체국으로 전화만 하세요! 그러면 무엇이든 다 해결 드릴게요! 아시겠지요?” “그라고 본께 전화가 있었는디 그것은 또 생각도 못했네! 아이고! 그란께 미련한데는 약도 읍단께!”

 

 

전남 보성 회천면 장군재에서 바라 본 득량만입니다.

 

 

 

 

 

 

41998

'따스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기세, 전화세  (0) 2012.02.26
겨울비 내리던 날  (0) 2012.02.18
시어머니 이름  (0) 2012.02.04
"고마워서 그래!"  (0) 2012.01.28
형광등  (0) 2012.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