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으디 갔다 왔서?"

큰가방 2012. 8. 11. 18:13

 

“으디 갔다 왔서?”

 

8월로 접어들면서 하늘의 태양은 더욱 강도를 높여 맹렬한 기세로 폭염을 쏟아 붓고 있는데 시골마을을 이어주는 기다란 도로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백 마리 잠자리 떼가 마치 비행 기술을 뽐내기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한 여름의 무더위를 즐기는 듯 보였다.

 

전남 보성 회천면 묵산 마을의 기다란 골목 끝 집에 조그만 택배 하나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께서 마루에 앉아 밭에서 따온 고추 손질을 하다 나를 보더니 “우메~에! 날도 징하게 더운디 고상해 쌓네~에! 얼렁 이리 그늘 잔 드루와!”하며 반기신다.

 

“할머니! 오랜만이네요. 그 동안 잘 계셨어요?” “아이고! 날이 이라고 덥고 그란디 잘 있었것서? 그냥 살고 있제! 그란디 오늘은 뭣을 갖고 왔어?”

“약이 왔나 봐요!”하며 조그만 박스 하나를 건네 드리자 “와따~아! 세월 참 빠르네 잉! 그새 한 달이 가 부렇는 갑구만!”

 

“그런데 오늘은 왜 놀러나가지 않고 집에 계세요?” “안 그래도 째깐 있다 나갈라고 날이 이라고 더울 때는 집이 혼자 있을라문 복장이 터질라고 그란단께!”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혼자 집에 계시려면 그러실 거예요.”하였더니 갑자기 내 얼굴을 한번 빤히 쳐다보더니 “그란디 아제! 요새 으디 갔다 왔어?”하고 물으신다.

 

“어디를 갔다 오다니요?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엊그저께는 아제가 안 오고 다른 양반이 왔드만 그래서 ‘나이 만한 아자씨는 으디 갔냐?’고 물었드만 천안인가 우드로 교육 받으로 갔다 그라데!”

“지난주 말씀이세요? 천안에 우리 부처(部處)교육원이 있어 일주일 동안 교육받으러 다녀왔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이! 늘 보이든 사람이 갑자기 안 보이고 딴 사람이 편지 배달하로 댕긴께 나는 아제가 인자 그만두고 집으로 들어 가분지 알았네!”

 

“정년하려면 아직 멀었으니 그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편지 배달은 저 혼자만 다니는 것이 아니고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며 다니기 때문에 3주 만에 한 번씩 오거든요.” “그래~에! 나는 아제 혼자서만 댕긴지 알았는디 그것이 아니구만! 그란디 으째 세 사람이 교대로 댕기까? 그냥 혼자 댕기문 더 조으꺼인디!”

 

“저 혼자 다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거나 해서 근무를 할 수 없으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은 편지 배달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교대로 다니는 거예요. 그럼 이만 가 볼게요!”하는 순간

“아제! 그냥 가지 말고 거그 솥단지 뚜봉 잔 열어봐!” “솥에 무엇이 있어 뚜껑을 열라는 말씀이세요?” “거그 아제가 조아한 것이 들어갖고 있응께 암말 말고 열어봐!”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고요?”하고 막 뚜껑을 열려는데 “뜨건께 조심해 잉!”하신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더니 이제 막 삶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맛있는 옥수수가 들어 있었다. “할머니! 옥수수 저 주려고 삶으신 거예요?” “아제 잡술만큼 갖고 가! 남은 것은 이따 놀러가서 노인들하고 묵을랑께!”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요새 아제가 안 오고 그래서 그만둔지 알았단께!" 

할머니의 옥수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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