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영감님의 약

큰가방 2012. 8. 18. 10:36

 

영감님의 약

 

장마가 끝나면서 찾아온 폭염은 8월에 접어들면서 쉬지 않고 맹렬한 기세로 어제보다 더욱 강열한 열기를 품어대고 있는데 회천면 동율리에 자리 잡고 있는 율포 해수욕장에는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찾아 온 수많은 피서객들이 시원한 바다와 함께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전남 보성 회천면 ‘말이 목이 마르다!’는 뜻을 지닌 갈마(渴馬)마을 세 번째 집에 조그만 택배 하나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영감님께서 집 아래채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를 하고 계신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무더운데 왜 방청소를 하고 계세요? 이따 시원해지면 하시던가. 그러시지요.” “우리 딸 내외하고 애기들이 여름휴가 받어 갖고 온다 그래서 청소잔 하고 있네!”하며 무척이나 설레는 눈빛이다.

“따님이 온다니까 좋으신가 봐요?”

 

“딸은 그라고 안 반가운디 손지들이 온다고 그랑께 으째 안 지달려 지것는가?”하며 자꾸 대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시더니 “애기들이 올 때가 되얐는디 으째 이라고 늦는가 몰르것네!”

“몇 시쯤에 도착한다고 했는데요?” “몰라! 아침에 일찌거니 나섰으문 인자 올 때가 안 되었것는가 잉?”하더니 천천히 대문 밖으로 나가신다.

 

“어르신! 택배는 받지 않고 어디가세요?” “그것은 우리 집사람 있응께 그리 줘! 나는 쩌그 잔 갖다 올랑께!”하고 부산하게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그때 마루에 앉아 영감님 모습을 지켜본 할머니 “와따~아! 놈 읍는 딸이나 있는가 으짠가 오늘은 별라도 설치고 난리네! 아들 온다 그라문 생전 마중 한번 안 나가본 양반이 딸이 온다 그랑께 별라도 지달려 쌓고 나가고 야단이단께!”하며 눈을 흘기신다.

 

“오랜만에 따님이 온다는데 왜 안 반갑겠어요?”하며 이륜차 적재함에서 조그만 택배 하나를 꺼내드리며 “할머니 이것 받으세요!”하고 건네 드리자.

 

“우리 영감 약 왔는갑네!” “무슨 약을 드시는데요?” “몰라! 옛날 젊을 때는 그라고 건강하든 양반이 인자 나이가 만해진께 안 아픈디가 읍는갑서! 그란디 으째 요새는 약을 안 자실란다고 아들한테 ‘인자 약 보내지 말어라! 안 묵어도 쓰것다!’그랬는갑서

 

그래갖고 약이 떨어져분께 몇날 며칠을 밤에 잠을 못자고 그래싸서 안되것기래 내가 영감 몰르게 아들한테 전화해서 ‘아이! 느그 아부지 약 잔 사서 보내라!’했드만 인자 왔구만.“

“그런데 왜 어르신께서는 갑자기 약을 안 드시겠다고 했을까요?” “몰라~아! 돈이 아까왔는가 안 그라문 아들한테 미안해서 그랬는가.”

 

“그런데 평소에 드시던 약을 갑자기 끊으시면 몸에 이상이 생길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아들한테 미안하더라도 약은 꼭 드시라고 하세요. 할머니도 생각해 보세요.

어르신처럼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아프지만 않아도 가족들에게는 큰 행복인데

만약에 약을 안 드셔서 몸에 이상이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 모두가 힘들어지거든요.”

 

“그랑께 말이여! 인자 딸이 온다 그랑께 말을 해 갖고 약을 꼭 자시라고 해야 쓰것구만! 그나저나 날도 징하게도 더운디 암껏도 줄 것이 읍어서 미안해서 으짜까?”

“괜찮아요. 할머니! 그럼 저 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멀리 동구 밖에서 하얀색 승용차 한 대가 마을로 들어오다 잠시 정지하더니 영감님을 태우고 있었다.

 

"인자는 약을 꼭 자시라고 해야 쓰것구만!"

"아제! 여그 씨연한께 쪼깐 쉬었다 가~아!"

 

 

 

 

 

 

 

 

 

42050

 

 

'따스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으로 나누자고 해야제!"  (0) 2012.09.09
"징하게도 안 낫네~에!"  (0) 2012.08.24
"으디 갔다 왔서?"  (0) 2012.08.11
영감님의 치매  (0) 2012.08.04
"착불도 된가?"  (0) 2012.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