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절 받은 사람이 누구여?"

큰가방 2013. 4. 20. 20:01

 

“절 받은 사람이 누구여?”

 

 

전남 보성읍 주촌마을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내현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로 접어들었는데 외현마을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 두 분이 지나가시기에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였더니 “잉! 우체구 아제구만! 오늘은 여그서 만나네! 그란디 날이 영 따땃해 갖고 댕길 만 하것네!”하며 활짝 웃으신다.

 

“그런데 어디를 다녀오세요?” “날이 존께 쩌그 읍에 가서 뭣을 잔 사갖고 오니라고!”

하며 물건이 담겨있는 검정 비닐봉지를 보이신다. “혹시 무거운 짐은 없나요? 있으면 제가 집까지 가져다 드릴게요.”

 

“무건 것은 읍고 개보운께 괜찬해! 그란디 오늘 우리 집이 편지 온 것은 읍스까?” “할머니 댁에는 건강보험 고지서가 나왔던데 이따 집으로 배달해 드릴게요.”

 

“그라지 말고 이리 주고 가제 그래! 골목질도 좁고 또 높은디 까지 올라 댕기문 영 미안하드랑께!” “괜찮아요. 그 정도 골목길은 오토바이가 지나다니기에는 넓은 편이거든요.”

 

“그래도 한 걸음이라도 덜 걸어야제! 얼렁 이리 주고 가!”

 

“그래도 집까지 가지고 가시려면 귀찮으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그것이 무거문 을마나 무거우껏이여? 괜찬항께 그냥 주고 가!”하기에 건강보험 고지서를 꺼내 드렸는데

 

 

“잉? 머시 한 개가 더 있네!”하신다. “이것은 금년에 건강진단 받으라는 안내서거든요. 그러니까 잘 놔두셨다 나중에 병원에 가실 때 가지고 가세요.”하였는데 옆 할머니께서

“그란디 아제! 금방 쩌그 담안 앞에서 이짝 질로 안 두루왔서?”하고 물으신다.

 

 

“저는 저쪽 주공아파트 옆길로 다니는 것이 더 가까우니까 그 길로 다니는데 왜 그러세요?” “아니~이! 내가 금방 담안 앞에서 우체구 아제가 지나가길래 손을 이라고 옆으로 붙이고 절을 항께 웃음서 지나가드만 금방 여그서 또 만나구만!”

 

“담안마을 앞에서 저를 만나셨다고요? 그쪽 길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다니지 않는데 누구를 만났을까요? 정말 저 같아 보이던가요?”

 

“몰라! 입하고 코는 개리고 또 머리는 삘간 오투바이 모자를 쓰고 눈만 내 놓고 댕긴디 얼굴이 보이간디! 그래도 아제하고 똑 같이 생겼드만 그래!”

 

“그래도 저는 아닌데 아마 다른 집배원에게 인사를 하셨나 보네요.”하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참말로 그랬으까? 그라문 무담시 절을 했네 잉! 그라문 으째야 쓰까?”

 

“왜요? 다른 사람에게 인사하신 것이 억울하신가요?”

 

“억울해서 그란 것이 아니고 생판 모른 사람한테 절을 했응께 도로 물려주라든가 해야제! 그냥 말어 불문 쓰것서?” “그런데 한번 해버린 절을 어떻게 물려달라고 하지요? 더군다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신다면서요.”

 

“그라문 조사를 해 봐야 쓰것구만!” “무엇을 조사하시게요?”

 

“그랑께! 나를 잘 모름서 내 절만 받은 사람 말이여! 그 사람을 조사해 갖고 절을 도로 뺏어 갖고 오든가 해야제 무담시 절만 한자리 손해보문 안 되제~에!”

 

“그러면 우체국 집배원들을 모두 모이라고 할까요?” “참말로 모이라고 하문 모이까?” “모이기는 하겠지만 할머니 댁으로 모이면 커피 끓여주려면 귀찮으실 텐데요”

 

“수가 몇이나 된디?” “보성우체국 집배원 만 모두 17명이요.” “이~잉? 그라고 만해? 그라문 안되것네! 내가 그냥 절 한자리 손해보고 말아야제!”

 

"할머니 무엇하고 계세요?" "날이 따땃항께 밭을 잔 갈아 놔야 뭣을 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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