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나쁜 언니

큰가방 2013. 8. 31. 16:33

 

 

나쁜 언니

 

오후 4시. 보성 읍내 거리곳곳에 서있는 빨간 우체통으로 천천히 달려가 통 안에 들어있는 우편물을 하나 둘 꺼내어 오토바이 적재함에 넣고 우체통은 더러워지지는 않았는지 또 무슨 고장은 없는지 점검하면서 이리 저리 우체통이 서있는 순서대로 우편물을 거두어 가다보니

 

보성읍 우산리 장미힐 아파트 앞에 서있는 우체통 앞으로 와서 막 문을 열려는 순간 이제 6살쯤으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내 곁으로 오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다.

 

“아니 우리 예쁜 공주님께서 왜 그리 슬피 울고 그러세요? 누가 때렸어요?” 하고 묻자 어린이는 아파트 주차장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이찌! 저기서요. 모르는 언니가 나를 밀었어요!” 하며 설움에 복받친 사람처럼 슬피 울기 시작한다.

 

“아니! 누가 우리 예쁜 공주님을 밀었어? 모르는 언니가 나쁜 언니구나! 어디 그쪽으로 가 보자! 아저씨가 모르는 언니 혼을 내야겠다!”면서 여자 어린이의 손을 잡고 주차장 쪽으로 갔는데 모르는 언니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갔는지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주님! 모르는 언니가 아저씨가 혼을 내려고 쫓아오니까 아마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갔나보다 그러니까 아무도 없지! 그렇지?” 하였더니 어린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얼굴을 보니 방금 전 울다가 그랬는지 아니면 무더위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눈에는 눈물 자국. 이마에는 땀방울. 코에는 콧물까지 나와 있었다.

 

“예쁜 공주님! 공주님은 얼굴이 더러우면 안 되는데 우선 땀부터 닦아야지!”하였더니 어린이는 손등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쓰윽 닦는다. “이번에는 눈물도 닦고!”하였더니 다시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빙긋이 웃었다.

“아이구! 우리 예쁜 공주님이 콧물도 나왔네! 아이구! 창피해라! 자! 코도 풀고!” 하였더니 이번에도 손등으로 콧물까지 쓰윽 닦아내기에 주머니에 들어있는 손수건을 꺼내 다시 어린이의 콧물을 닦아주면서

 

“우리 예쁜 공주님이 코를 닦으니까 아주 예뻐졌네! 자! 아저씨가 사탕 한개 줄께~에!”하며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어른의 엄지손가락만한 사탕 한 알을 꺼내어 어린이 손에 쥐어주었더니 여자 어린이는 방금까지 몹시 화가 난 표정은 간곳이 없고 어느새 빙그레 웃는 얼굴로 바라본다.

 

“자! 이제 엄마한테 가야지! ‘아저씨! 안녕히 가세요!’인사하고 가야지!”하였더니 여자 어린이는 이제 완전히 화가 풀렸는지 방글 방글 웃는 얼굴로 “아지찌! 안녀이 가세요~오!” 하며 코가 땅에 닳을 정도로 넙죽 인사를 하고는 아파트 102동 쪽으로 통 통 통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 어린이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흐뭇한 마음이었다. 방금 전 여자 어린이가 언제 한번이라도 나를 만난 적이 있었을까? 오늘 비록 처음 만난 사이일지라도 집배원 아저씨는 언제나 어린이의 친구라는 사실이 늘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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