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난중에 가프께!"

큰가방 2013. 9. 14. 18:35

 

“난중에 가프께!”

 

회천면 용산마을 가운데 골목길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데 “우체구 아제~에! 나 잔 보고 가~아!”하며 할머니께서 부르신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오늘은 밭에 안 나가셨어요?” “아이고! 바태도 자꼬 댕겨싼께 너머 심이 들어서 오늘은 째깐 쉴라고 안 갔어!” “그러셨어요. 잘하셨네요. 일도 쉴 때는 쉬어가면서 해야지 너무 힘들게 하면 안 좋아요.”

 

“그랑께 말이여! 그란디 우리 집 세금을 째깐 가지가 불문 쓰것는디 으짜까?”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져 오세요!”하였더니 집으로 들어가신 할머니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으신다. “할머니 뭐하고 계세요?”

 “아니 내가 세금 낼 종우때기를 으따가 놔뒀는디 암만 찾어도 안 뵈인당께! 이일을 으째사 쓰까?”

 

“그러시면 그냥 4천 4백 원만 주세요. 고지서는 제가 면사무소에서 다시 재발급 받으면 되니까요.”

“그란디 돈도 으따가 둿는지 몰르것당께!” “세금 낼 고지서도 돈도 없으시면 어떻게 하지요? 그러면 오늘은 바쁘니 그냥 갈게요. 내일 고지서와 돈을 준비해 놓으세요. 제가 지나가는 길에 들릴게요.”

 

“아이고! 미안해서 으짜까? 잉! 그란디 내가 낼은 바태 가 불문 아제를 못 만나꺼인디 으짜까?” “그러면 고지서와 돈은 비닐봉지에 담아 여기 있는 우편 수취함에 넣어두세요. 아시겠지요?”

“잉! 대차 그라문 쓰것구만 알았써!”하셔서 지등마을로 향하였는데

 

지등마을 가운데 집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 “핀지 아자씨 여그 째깐 왔다가~아!”하며 할머니께서 부르신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부탁하실 거라도 있으세요?” “부탁할 거시 머시 있으꺼시여? 이것 잔 우체구에 갖다 바쳐주라 할라고 그라제!”

 

“그런 부탁은 얼마든지 하셔도 되니까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란디 내껏만 있는거시 아니고 옆에 집에서도 나보고 내주라고 갖다 매껴싼네!”

“세금은 한 장이든 열장이든 우체국에 납부하기는 마찬가지거든요. 그러니 많을수록 좋아요.”

 “그래 잉! 그라문 다행이고! 그란디 내가 장년에도 아자씨한테 이것을 내주라고 부탁한 것 같은디 내말이 맞제?”

 

“그런데요. 제가 그것까지는 기억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요?

왜냐하면 주민세나 재산세 같은 세금은 하루에도 여기저기서 많이 부탁하기 때문에 여러 건을 받아서 납부하는데 어떻게 일일이 그것을 다 기억하겠어요?”

 

“대차 그라것네 잉! 그란디 내가 생각해 봉께 아자씨가 틀림 읍구만!” “그란디 그것은 알아서 뭐하려고 물으세요?”

“아니~이! 자꼬 아자씨 성가시게 심바람만 시켰는디 공도 못 가프고 나도 인자 나이가 만코 그랑께 내년에도 또 아자씨한테 이른 것을 내다주라고 또 부탁할 수 있을란가 시퍼서 물어보니라고!”

 

“그러면 할머니께서 얼른 돌아가시게요?”하였더니“와따~아! 내가 그라고 보기가 실은가?”하며 갑자기 화가 나신 표정이다.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계세요. 그리고 세금이 아니라도 부탁하실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아시겠지요?”하였더니

 

“고맙소! 그래도 늘근이한테 얼렁 죽으란 소리는 안하고 먼 부탁이든 하라고 해싼께 참말로 고맙소 잉! 내가 지금은 아자씨 공은 못 가퍼도 난중에 주거서라도 꼭 가프께 잉!”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내년에도  내가 이른 것을 내주라고 부탁할 수 이쓸랑가 몰르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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