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지 못한 돈
8월이 거의 끝나가고 있지만 하늘의 태양은 더욱 강렬한 폭염을 쏟아 부으며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 것처럼 이글거리는데
시골마을 입구에 무성한 푸른 잎으로 단장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서있는 커다란 정자나무는 지나가는 매미를 불러 앉혀놓고 오늘도‘매~엠~맴’맹렬한 합창을 시키고 있었다.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양동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평상(平床)을 놓아두고 할머니 세분께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다 나를 보고 반갑게 맞이하신다.
“아제! 날씨가 징하게도 더운디 참말로 고상해쌓네! 이루와서 쪼깐 쉬었다 가!”
“안녕하셨어요? 그런데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에어컨이 있는 회관으로 가시지 않고 왜 여기 계세요? 아무래도 에어콘 바람이 더 시원하고 좋을 텐데요.”
“아이고! 에어콩인가 머신가 그것 바람이 영 안 좋드만 더울 때 틀문 그때만 쪼깐 씨연하고 배깥으로 나오면 더 더운께 그냥 이리 나와부렇어!”
“그러셨어요? 하긴 그렇기는 해요. 아무리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고 해도 들녘에서 불어오는 자연 바람과 같겠어요? 게임이 안 되겠지요.”
“그랑께 말이여!”하고 있을 때 할머니 한분께서 “그란디 아제! 내가 무슨 부탁을 잔 한 가지 해야쓰것는디 으짜까?”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러세요?”
“아니~이!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집이 말레에 놔 둔 세금 아제가 갖다 놨제?” “예! 엊그제 배달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나요?”
“아니~이! 머시 잘못되얐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 잔 갖다가 우체국에 바쳐주문 안 되까?”
“그런 부탁이라면 미안하게 생각하지마시고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런데 지금 고지서는 가지고 계세요?”
“아니! 그것은 지금 우리 집에 있는디!” “그러면 제가 마을에 우편물 배달하고 올 동안 가지고 나오시면 되겠네요.” “잉! 알았어! 내가 얼렁 가서 금방 갖고 오께!”
“아무래도 제가 마을에 들어가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천천히 가져오셔도 되요! 혹시 날씨가 무더운데 여기까지 나오기 힘드시면 제가 할머니 댁으로 갈까요?”
“아니여! 내가 찬찬히 갖다 오께 혼자 집이가 있을라문 심심한께 도로 이리 와야 되야!” “예! 그럼 천천히 다녀오세요!”하고
마을의 우편물 배달을 모두 끝내고 다시 평상으로 왔는데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어? 이상하다? 아직 고지서를 못 찾으셨나?”하고
할머니 댁으로 향하였는데 방문만 활짝 열려있을 뿐 계시지 않았다.
“이상하다. 할머니께서 어디를 가셨기에 안 계실까?”하고 막 대문을 나오려는데 바로 아랫집에서“광천 떡! 광천 떠~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이! 재산세 고지서를 어디에 두셨기에 광천 댁을 찾으세요?”
“아니~이! 세금을 낼라고 본께 돈이 째깐 모지라네! 그래서 잔 빌릴라고 했는디 동네에 사람들이 암도 안 보인단께!”
“그러면 이 더위에 지금까지 돈 빌리려 다니셨단 말씀이세요?” “그랬제~에! 오늘 아제를 만났을 때 줘부러야제 낼 또 아제를 지다릴라문 한정이 읍쓰껏인디!”
“그러면 우선 제 돈으로 세금을 납부해도 되는데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돈을 빌리러 다니셨다는 말씀이세요?” “그라고 해주문 고맙제만 미안해서 우추고 그라고 시키꺼시여? 그랑께 안 되제~에!”
"요새는 아침 저녁으로 날이 솔찬이 춥드랑께 그랑께 문을 볼라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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