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말로 미안하요! 잉!”
전남 회천면 동촌마을 입구로 들어서려는데 마을 앞쪽 로터리를 곱게 쳐 검정 비닐을 깔아놓은 밭에서 여러 명의 아주머니들이 쪽파 심기에 여념이 없어 보이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엉님! 이리 잔 와 보씨요!”하는 소리가 들린다.“형님이라니? 혹시 누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잠시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엊그제까지 붉은 고추가 주렁주렁 열려있던 밭을 어느새 깨끗하게 정리하여 커다란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로터리를 치고 있는 한쪽에서 평소에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던 40대 중반의 마을 동생이 간식을 먹으면서 부르고 있었다.
“엉님! 요새는 그래도 날이 쬐깐 씨연항께 댕길 만 하시것소? 잉! 오늘 나 여그 앙거서 샛껏 묵고 있단 말이요. 그랑께 이루와서 쏘주 한 잔만 하고 가씨요!”
“말씀은 고마운데 아직은 오토바이 운전 중이라 술을 마시기는 조금 곤란한데 다음에 마시면 안 되겠는가?”
“엉님 말씀을 듣고 봉께 그라요 잉! 그라문 술은 자시라고 하문 안 되것고 오늘 우리 집 편지는 있으께라?”
“자네 집에 우편물이 있기는 한데 지금 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그걸 받아 무엇 하려고 그러는가? 내가 자네 집 우편 수취함에 넣어 둘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시게!”
“그라문 조체만 미안항께 그라지라. 하레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우리 집이 올라오기도 성가시껏인디 이삐잔은 딸래미들이 있응께 머시 그라고 날마다 와싼지 나도 잘 몰르것드란 말이요!”
“그래도 지금이 좋은 때야! 이제 몇 년 지나고 예쁜 딸들이 결혼이라도 하고 나면 자네 집에 올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랑께 말이요! 그란디 엉님은 농사를 을마나 짓고 계시요?” “나~아! 나는 농사가 없는데!” “그래요 잉! 그라문 손은 편하제만 그 대신 입도 편항거인디 농사를 째깐이라도 지어 보제 그라요!”
“나는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지어본 일이 없어 어떻게 농사를 짓는 줄도 모르는데 이제 와서 무슨 농사를 짓겠는가? 그러니까 아예 포기를 해 버린 거지.”
“그래요~잉! 그란디 우리 집 편지가 있다 그랬소? 읍다 그랬소?” “우편물? 뭐가 있기는 있는 것 같던데!” “그래요? 그라문 머시 왔습디여?”
“유선방송 시청료 고지서 나왔던데!” “테레비 본 것 말이요?” “아마 그런 것 같아!” “그라문 그것 이리 줘 부씨요!”
“왜? 자네가 가지고 가려고?” “내껏인디 내가 갖고 가문 안되께라? 날마다 우리 집이 올라 댕기기도 보통 일은 아니껏인디 안 그라요?”
“그런가? 그러면 여기 있네!”하고 우편물을 내밀었더니
“미안하제만 그것 그냥 우리 집이 갖다 놔 부씨요! 엉님이 성가시제만 내가 여그서 일을 하고 있응께 그것 바더갖고 이져불문 안 된단 말이요! 엉님 참말로 미안하요 잉!”
어느새 가을은 우리 곁에 가까이 찾아와 웃고 있었습니다.
'빨간 우체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체국으로 가세요!" (0) | 2013.11.10 |
---|---|
시할머니의 사랑 (0) | 2013.11.03 |
"싸우지 마세요!" (0) | 2013.10.20 |
"아가씨로 바꿨어요?" (0) | 2013.10.12 |
빌리지 못한 돈 (0) | 2013.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