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우체국으로 가세요!"

큰가방 2013. 11. 10. 09:14

 

“우체국으로 가세요!”

 

전남 회천면 원영천마을 가운데쯤 할머니 댁에 전신환이 들어있는 등기를 배달하려고 대문 앞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문을 열려고 하였으나 굳게 잠겨 있는지 열리지 않았다.

이상하다? 평소에는 대문을 잠그지 않는데 왜 잠겨있지? 그러면 할머니는 어디 가셨을까?”하며 오토바이로 “빵! 빵!”소리를 냈더니 건너편 회관 앞에서 멍석 위의 벼를 저으며“아제 나 여깃응께 이루와! 이리!”하며 부르신다.

 

“왜 대문을 잠가놓으셨어요? 저는 대문에 잠겨있어 할머니께서 어디 멀리 나가신 줄 알았어요.” “내가 대문을 잠굴라고 한거시 아니고 항상 문 앞에다 독을 바쳐논디 오늘은 그거시 빠져부렇는가 으쨌는가 잠가져 부렀단께!”

“그럼 이따 집에 들어가실 때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나한테 쇠때가 있응께 그것으로 끌르고 들어가문 되제 으채!” “정말 그렇게 하시면 되겠네요.”

 

“그란디 오늘은 머시 왔간디 나를 찾아싸?” “등기가 하나 왔네요.” “등기가 왔다고?” “누가 돈을 보냈나 봐요.”

“오~오! 우리 아들이 내 생얼이라고 보냈는 갑구만!” “할머니 생신이 언제인데요?”

“낼 모레가 내 생얼이여! 그란디 그것은 으째 물어봐?” “그냥 궁금해서요.” “아이고 별거시 다 궁금하네! 그란디 돈이 을마나 왔어?”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환증서를 봐야 하니까요.”하고 봉투를 개봉하여

 

“2십 만원이 왔네요.” “2십 만원이 왔다고? 그라문 그것 아제가 바까줄 수 있으까?”

“제가 돈을 2십 만원씩 가지고 다니지 않아 바꿔드릴 수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돈이 빨리 필요하지 않으시면 우체국에서 바꿔다 내일 가져다 드릴 수는 있어요.”

 

“그라문 낼도 이 시간에 올 것 아니여?” “아마 거의 그럴 거예요.” “그라문 너머 늦은께 안 되것는디 으짜까?” “그러면 할머니께서 우체국에 가시는 수밖에 없어요.”

“그라문 그래야 쓰것구만 돈 바꾸문 읍(邑)에 가서 멋도 사고 하꺼인디 한읍시 지다릴 수가 읍응께! 안 그래?”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금년에는 작년에 비하여 벼가 많이 나오던가요?” “몰라! 이것 날마다 젓기도 징해서 오늘은 그냥 안 덥고 놔 둬 불라고!” “그러면 밤에 이슬이 내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슬 내리문 할 수 읍제 으짜것이여! 이것 젓기도 징하게 성가시네!” “그러게요. 농사 짓는 일이 어디 쉬운 게 있겠어요? 그럼 저 그만 가 볼게요!”하고

 

옆의 골목길로 들어가 우편물을 수취함에 넣고 나왔는데 “아제! 이리 잔 와봐! 어서!”하고 할머니께서 곤란한 표정으로 부르신다.

“왜 그러세요? 혹시 뭐가 잘못되었나요?” “아니~이! 그거시 아니고 돈을 으디가서 차즈라고 조합으로 가야되야? 우체구로 가야되야?”

 

“그거야 당연히 우체국으로 가셔야지요. 방금 제가 그랬잖아요. 우체국으로 가시라고요.”

“그랬제 잉! 그란디 내가 아제하고 금방 딴 이야기 하다가 이져부렇단께!” 하시며 빙긋이 미안한 웃음을 웃고 계셨다.

 

"와따~아! 인자는 날마다 이것 젓기도 성가시고 징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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