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걱정거리
어젯밤 아무도 모르게 찾아 온 겨울이 가을을 쫓아내고 눌러 앉아버렸다. 들녘에 내린 새하얀 서리는 하얀 눈처럼 반짝이며
떠나버린 가을을 애타게 불러대는데, 동구 밖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있는 커다란 정자나무 가지에 마지막 남아있는 잎 새 한 장이
지나가는 바람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새로 구입한 바지 길이를 줄이려고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친구는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재봉틀 앞에 앉아 털 스웨터에 지퍼를 달면서. “요즘 날씨도 추워지는데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 묻는다. “어떻게 지낼 것이나 있는가?
그냥 그럭저럭 지내고 있지 그런데 날이 추워진다는데 월동준비는 끝이 났는가?” “월동준비? 그러고 보니 그 소리 들어본지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옛날에는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 연탄(煉炭)도 들여놓고 했는데 요즘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니 그게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 혹시 옷 맡겨놓은 것 있는가?” “아니 맡겨놓은 것은 없고 바지 길이를 좀 줄이려고 가져왔네!”하며
옷을 친구에게 내밀자 “새로 하나 사왔는가?” “작년에 입던 게 허리가 너무 커서 하나 장만했네!” “그랬는가? 그러면 길이만 줄이면 되겠는가?”
“그렇지!”하며 친구를 쳐다보니 머리가 듬성듬성 많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자네는 언제부터 그렇게 머리가 빠졌는가?
그러다 대머리될까 걱정일세!” “언제부턴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날 우리 집 논(畓)에 모를 심는데 내가 안 나가볼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잘 하지도 못하는 논일 한다고 모자도 쓰지 않고 나가서 일을 하는데 머리가 굉장히 뜨겁더라고, 그래서 ‘이상한 일이다!
왜 이렇게 뜨겁지?’하고 집에 와서 거울을 봤더니 정수리 부분이 훤하게 보이는데 이미 머리는 다 빠져버린 것처럼 보이더라고!”
“그럼 자네 아버님께서도 그렇게 머리가 없으셨을까?” “아니! 그렇지 않고 우리 아버지와 형제분들은 빠진 분은 안 계셨는데 내가 이렇게 빠지더라고.”
“그럼 자네 형제들은 어떤가?” “나에 비하면 다 괜찮은 편이야! 그런데 대머리도 유전(遺傳)이 되는데 한 대를 걸러서 되니까
우리 할아버지께서 없으셨는지 어쨌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거든. 그런데 자네는 어떤가?” “나도 상태가 아주 안 좋은 편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집배원(集配員)으로 근무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집배원들은 매일 오토바이를 타야하니까 꼭 헬멧을 착용해야하는데
그게 겨울에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여름에는 아주 고역이거든, 사람이 머리에서 땀이 엄청 많이 나는데, 햇볕 뜨거운 한 여름 삼복(三伏) 더위에
오토바이 타고 가다, 조금 쉬거나 또 택배라도 배달하면서 잠깐 고개를 숙이면 헬멧 속에서 땀이 줄~줄~줄 흐르는데 거짓말 조금 보태면
마치 폭포수가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 머리털이 남아나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머리가 안 빠지는 사람은 안 빠지던데
자네 집안도 혹시 대머리 집안 아닌가?” “내가 우리 할아버지를 본적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그렇게 빠지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내가 이렇게 빠지다보니 마음 한편으로는‘이 나이에 머리 좀 빠지면 어떠냐? 장가 갈 일이 없으니 맞선 볼일도 없고
그런데 무엇이 걱정이냐?’하면서도 마음은 늘 머리에 있더라고.” “그러니까. 머리에 신경을 안 쓰면 더 좋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전혀 안 쓸 수가 없으니 그게 문제야! 엊그제 TV를 보니 우리 국내 기술진이 탈모(脫毛)에 좋은 약을 개발했다고는 하는데
가격은 어떨지! 하여튼 탈모에 가격이 저렴하면서 특효약이 있다면 정말 대박일 텐데 그런 약은 언제쯤 나올까?”
가을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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