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 산소와 벌초
친구의 장인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친구들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고인(故人)의 명복을 빌고 상주(喪主)들과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자 음식을 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상(喪)을 당한 친구 부부가 우리 곁에 앉으면서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네!”인사를 하였다. “자네 장인어른께서는 금년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가?” “올해 87세 되셨거든.”
“그러면 평소에 병석에 누워계셨는가?” “아니 그런 것은 없고 늘 건강하게 계셨는데 갑자기 처남에게‘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거든.” “금년에 87세 되셨으면 요즘 나이로는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실 나이신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니
자손들이 많이 섭섭하였겠는데.” “그러게 말일세!”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명이 많이 늘어나서 그렇지
옛날 같으면 호상(好喪)이라고 할 거야.” 친구의 말에. “어떻게 생각하면 고인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면 굉장히 서운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지인(知人) 한 분은 7년 동안이나 어머니 병 수발을 하셨거든. 그런데 처음 2~3년은 그래도 어쩐지 모르고 넘어가더라는 거야.
그런데 4년이 넘어가고 5년째가 되자 정말 죽을 지경이 되어‘어머니 제발 좀 돌아가시씨요! 당신이 가셔야 나도 편하고 ,
식구들도 편하고 집안 모두 편하것소! 그러니 제발 좀 가시씨요!’하고 빌었다는 거야. 그런데 7년째 되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거야.
그래서 치상(治喪)을 치르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니 슬며시 걱정이 생기더라는 거야.” “무슨 걱정이 생겼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내가 어머니께 빨리 돌아가시라고 빌고 또 빌었는데 그것을 본 내 자식들은 나에게 어떻게 할까? 혹시 불효라도 하면 어쩔까?’하는
걱정이었는데 그래도 다행스럽게 자식들이 다 효도를 해서 고맙더라는 거야.” “당신이 직접 어머니 귀에다 대고 큰 소리로
‘어머니 지금 빨리 돌아가세요!’하고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저 마음속으로만 돌아가시라고 빌었겠지.
그리고 1~2년도 아닌 7년 동안을 병수발을 하신 아버님을 보고 자랐을 자식들인데 어떻게 부모님께 효도를 안 할 수가 있겠는가?”
“요즘 우리들 세대를 보고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만 우리 자식들에게는 버림받는 세대’라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자네도 생각해 보게 그래도 우리는 부모님이 불편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불편을 덜어드리고 편안히 모시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래도 정 안 되면 요양원으로 모시든지 하는데, 우리 자식들이 과연 그럴까?” “그렇기는 힘들 거야.
내가 아는 지인(知人) 한 사람은 일 년에 한번 하는 산소의 벌초도 하기가 싫다며 잘 계시는 조상님 시신을 파내 불태운 다음
들판에 뿌려버리고 봉분(封墳)도 아예 없애버렸더라고.” “아니 벌초가 하기 싫으면 요즘은 대신해주는 업체도 있고 그러니
거기에 부탁을 하지 그렇다고 조상님 시신을 파내 불로 태운다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닐까?” “그러게 말이야! 벌초가 하기 싫으면 아예 하지 말고 그대로 놔두면 언젠가는 묘도 사라질 것 아닌가?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을
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할까?” 그러자 한 친구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애들에게 이렇게 미리 부탁을 해 두었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할머니 산소 주위에 뿌려라! 그리고 조상님 산소 벌초는 하기 싫으면 그냥 그대로 두어라 그렇게
몇 년 만 지나면 산소에 풀이 자라나면서 덮어지고 자연히 없어 질 테니까.”
구몽산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