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꼬 없는 찐빵
"막내 동생이 모레 이사 한다고 나보고 좀 도와달라는 전화가 왔는데 갔다 오면 안 될까?" "언제 갔다 내려오려고?"
"내일 올라가서 모레 이사하는 것 도와주고 월요일 날 내려오려고!" "그럼 그렇게 해!" "그럼 월요일까지 먹을 수 있도록
밥을 충분히 해 놓고 반찬도 많이 만들어 놓고 다녀오면 될까?" "밥은 없으면 내가 지어먹으면 되고 국도 끓일 수 있으니
김치나 준비 해놓고 다녀와!" "그래도 혼자 지내려면 불편할 텐데 밥은 넉넉하게 해 놓을게!" "밥은 해 놓은 지 오래되면
밥맛도 떨어지고 냄새가 나서 먹기 싫더라니까. 그냥 김치만 준비해 놓고 다녀와!" 해서 집사람은 토요일 오전. 기차(汽車)를 타고
경기도 부천에 있는 막내처남 집으로 출발하였고 나는 직장에서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와 전기밥통을 열어보니
밥이 세 그릇 정도가 있어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밥은 집에서 먹고 낮에는 가까운 산에 산행(山行)을 마친 다음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라면으로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운 다음 월요일 아침은 남은 밥을 먹으면 되겠구나! 그리고 월요일 저녁은
집사람이 돌아오면 해결될 일이고!" 하는 생각에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예정대로 토요일 저녁밥은 간단하게 해결하고
일요일 산행을 다녀 온 다음 빨래는 세탁기에 넣어두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저녁을 해결하기 위하여
라면을 끓이면서 '마누라 없어도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하였고 월요일 아침 계획대로 밥통에 남아있는
밥으로 식사를 해결한 다음 출근하였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여보! 나야! 아침 식사는 하고 출근한 거야?"
"그럼 밥도 안 먹고 출근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아니~이! 다른 것이 아니고 어제 동생네
이사는 끝났는데 짐 정리가 하나도 안 됐거든 그래서 오늘까지 도와주고 내일 내려가면 어떨까 해서!" "내일 내려온다고?
그럼 그렇게 해!" "그런데 밥은 있어?" "밥? 밥이야 내가 지어 먹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정리 잘해주고 내려와!"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으면서 집 사람이 나를 보고 '당신은 내가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야! 알았어?' 했던 말을 떠 올리며 '이번 기회에 나도 밥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하며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부었는데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가만있자! 이럴 땐 어떻게 하지?
집 사람에게 전화를 해 봐?" 하다 "대충 눈금에 맞춰 부어놓으면 되겠지! 설마 밥솥이 폭발하기야 하려고?" 하는 생각에
물을 붓고 취사 버튼을 누른 후 밥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이상하다? 평소에는
밥이 거의 다 되면 '칙! 칙! 칙!' 소리가 난 다음 '뛰! 뛰! 뛰!' 경고음이 들리고 그 다음 '치~~~익!' 소리가 나야 하는데
왜 아무 소리가 없지?" 하며 밥솥 뚜껑을 열자 밥이 거의 다 된 것 같아 보여 맛을 보았더니 생쌀 그대로였다.
"아뿔싸! 물을 너무 작게 부었구나!" 하고 재빨리 물을 더 부은 다음 다시 취사 버튼을 누른 후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번에는 밥솥에서 '치~익!'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다시 밥솥을 열고 맛을 보았는데
절반은 익고 절반은 생쌀인 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직도 물이 부족한가?" 하고
이번에는 물을 더 많이 붓고 취사 버튼을 누른 후 한 참을 기다린 다음 다시 밥솥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이번에는 풀 냄새가
확 풍기면서 밥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더욱 아닌 이상한 음식이 되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아이고! 큰일 났다!
이일을 어쩔거나? 이걸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그러면 개에게 먹으라고 줄까? 역시 마누라 없는 나는 영락없는 앙꼬 없는 찐빵 신세구나!"
구몽산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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