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멧돼지와 비둘기

큰가방 2019. 9. 28. 14:16

멧돼지와 비둘기

 

길을 가다 누군가 형님! 어디 가세요?”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잘 아는 후배가 빙긋이 웃고 있었다. “동생 오랜만일세!

지금 어디 가는 길인가?” “우체국(郵遞局)에 볼 일이 있어 다녀오려고요.” “그래! 몸은 건강하신가?”

 

저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건강한 편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좋은 일일세! 그런데 금년에 양파 수확은 모두 끝이 났는가?”

저는 금년에 양파를 심지 않고 감자를 심었어요.” “그랬어? 그렇다면 올봄 가뭄 때문에 작황(作況)이 별로 좋지 않아

 

가격이 형편없다고 야단이던데 자네는 어떤가?” “저는 종자(種子)를 일찍 심었거든요. 그래서 수확도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했기 때문에

값도 제대로 받았어요.” “그랬으면 정말 다행일세! 그런데 일찍 수확하는 종자가 따로 있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수미와 추백이라는 종자가 있는데 추백은 주로 조림용 그러니까 식당(食堂)에서 음식(飮食) 만들 때 사용하는 것이고

수미는 쪄먹는 것인데 추백이라는 종자가 아무래도 수미 보다 생육 기간이 짧아 조금이라도 일찍 수확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감자를 쪘을 때 맛이 없다고 하지는 않던가?” “그런데 수확을 해 놓고 보면 그게 수미인지 추백인지 얼른 봐서는 잘 모르거든요.

그리고 감자를 찔 때 조금 신경 써서 찌면 맛도 차이 나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남 보다 더 일찍 수확해서 시장에 내 놓으면

 

조금이라도 비싼 값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감자를 밭에 심어놓고 멧돼지들 습격은 안 받았는가?” “저의 밭은 산()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덜한데 가까이에 있는 밭들은 아무래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거든요.” “옛날에 들은 이야기인데

 

회천면(會泉面)의 영감님 한 분은 경찰관들이 밤에 교통정리 할 때 사용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경광등 있지 않은가?

그걸 밭에 설치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효과를 봤다고 하던가요?” “일 년 정도는 멧돼지들이 내려오지 않더라고 하시는데

 

그 다음부터는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고.” “그래요! 그러면 우리 마을에도 내년에는 그걸 한 번 설치해 보도록 해야겠네요.”

아니 일 년밖에 효과가 없다는데 그래?” “일 년만 피해를 보지 않아도 그게 어딥니까? 그런 정보는 많이 알수록

 

저희들은 좋거든요.” “그러면 감자를 캐낸 밭에는 무엇을 심을 생각인가?” “지금 무슨 작물을 심어야 할까? 생각 중에 있어요.”

작년에는 콩을 심었다면서 수입이 떨어지던가?” “그게 아니고 그걸 심어놓으면 비둘기들이 와서 다 파먹어 버리니까요.”

 

비둘기가 파먹어버리더라고? 그러면 허수아비 같은 것도 세워 봤는가?” “그런데 그게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데

며칠 지나면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조그만 허수아비를 만들어 밭 가운데 앉히고 거기에 우산을 씌운 후

 

라디오를 계속해서 틀어놔 봤어요.” “그래서 무슨 효과가 있던가?” “처음에는 새들이 오지 않더니 며칠이 지나고 나니

허수아비 바로 옆에서 파먹고 있더라고요.” “누구 말을 들으니 콩 종자에 독한 냄새가 나게 해서 심어 놓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것도 해 봤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아예 싹을 틔운 후 밭에 옮겨 심었더니

이번에는 싹을 먹지는 않은데 대가리를 모두 부러뜨려 놓았더라고요.” “그것 참! 고약한 비둘기들일세! 그러면 무슨 대책은 없을까?”

 

가만히 보니 비둘기들이 콩을 심어 놓으면 꼭 날아들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새들도 콩 심는 시기를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금년에는 아무 것도 심지 않고 조금 땅을 쉬게 한 뒤 가을에 일찍 쪽파를 심으면 어떨까? 생각중이거든요.”

    

금년에 유난히 많았던 태풍과 비 바람을 이겨낸 벼들이 누런 빛으로 변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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