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두꺼비들의 행진(?)

큰가방 2004. 2. 28. 12:35

어제 오후에는 마치 짙은 안개가 끼어있는 듯 사방이 어두컴컴할 정도로 짙은 황사가 덮여
있었으나 오늘은 황사가 물러가고 다시 맑은 하늘이 봄을 알리는 듯 환한 햇빛을 비추고 있
습니다. 해변의 들녘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쪽파수확에 한창입니다. 해변의 기온은
한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닐을 쪽파의 키보다 약간 높게 하여
길게 터널 식으로 덮어놓으면 겨울에도 쪽파가 얼지 않고 싱싱하게 자라납니다. 그러면 이
른 봄에도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에 봄철 특별한 소득이 없는 농촌에서는 좋은 소득 원이 되
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부지런히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군 회천면 천포리 갈마
마을입니다. 갈마 마을에서 등기 우편물을 한 통 배달하려고 하는데 수취인의 집이 얼른 생
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주민에게 물어보려고 변영수 씨의 댁으로 들어갑니다.
그러자 이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히 저에게 인
사를 하면서 "아저씨 우리 집에 편지 왔어요?" 하고 묻습니다. "아니요 편지가 온 것이 아
니고 혹시 김영기 씨라고 아시겠어요?" 하고 제가 묻자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을 하
더니 손가락으로 골목길을 가르치면서

 

"아저씨 김영기 씨 집은 요 아래쪽 골목길 있지요? 그 길을 따라서 우리 집 울타리를 한바
퀴 빙 돌아 저 쪽 위쪽 검은 기와집 보이시지요? 그 집이 김영기 댁이에요!" 하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 줍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하고서는 저는 변영수 씨 댁을 나와 마을 골
목 입구에 걸려있는 우체통의 문을 열어봅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가끔씩 우체통에 우편물이
한 두통씩 들어있었는데 요즘은 우체통에 우편물은 들어있지 않고 대신 마을 주민들이 공과
금을 우체국에 납부 해 달라고 우체통에 넣어두는 경우가 있어서 이제는 우체통이 마을 주
민들의 공과금 보관 장소로 이용이 되고있습니다.

 

저는 우체통에 우편물이 있는지 확인을 하고 우체통의 문을 막 닫고 있는데 방금 저에게 김
영기 씨 댁을 가르쳐주던 청년이 헐레벌떡 저에게로 뛰어오더니 "아저씨 미안합니다. 방금
제가 김영기 씨 댁을 가르쳐주었지요? 그런데 제가 다시 생각해보니 김영기 씨 댁은 그 집
이 아니고 바로 저의 집 뒷집이네요! 미안합니다!" 하는 겁니다. "아니 그걸 알려주려고 이
렇게 달려왔어요? 그냥 집에서 큰소리로 말을 하면 될텐데!" 하는 저의 말에 청년은 "아이
고 아저씨 그러면 된답니까?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고생을 하시는데 집이라도 제대로 가르
쳐드려야지요!" 하면서 집을 잘못 안내하여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입니다.

 

그래서 제가 빙그레 웃으며 "예! 고맙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기합을 한번 받으셨군요!" 하
였더니 청년은 이제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아저씨 그럼 수고하세요!" 하고는 집으로 돌아갑
니다. 저는 이제 갈마 마을의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다시 화죽리 회동 마을을 향하여 오토
바이를 달리고 있는데 도로의 오른쪽 양지 바른 곳에서 두꺼비 한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가
는 것이 보입니다. "아니 아직 경칩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웬 두꺼비가 벌써 나왔을까?" 하
는 생각을 하다가 "회천면의 기후가 보성읍 보다 상당히 포근하여 두꺼비가 겨울잠에서 일
찍 깨어 나온 것 같다!" 는 생각을 하면서 회동 마을로 향하여 오토바이를 달리고 있는데

 

회동 마을로 가기 전 도로 오른쪽 조그만 저수지를 막 지나서 왼쪽에 있는 산 아래쪽 도로
에 어른의 손바닥만 한 큰 두꺼비에서 성냥갑 만 한 작은 두꺼비들이 떼를 지어 엉금엉금
기어 도로 건너 양지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났는지 도로바닥
에 웅크리고 앉아서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꺼비도 있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두꺼비 또
몇 마리는 지나가는 차량에 치여서 죽어있는 두꺼비들이 어림잡아 약 100여 마리 이상은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양지쪽에 이미 도착한 두꺼비는 동작이 훨씬 빠른데 비하여
응달쪽에 있는 두꺼비는 거의 힘이 없어 탈진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두꺼비들이 오토바이에 치여죽지 않도록 조심조심하여 두꺼비들 사이를 빠져나오면서
"참! 자연이란 정말 신기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두꺼비들이 봄이 온 것
을 알고 겨울잠에서 깨어났을까? 그것도 한 두 마리도 아니고 100여 마리나 되는 두꺼비들
이 한꺼번에 겨울잠에서 깨어나 양지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양지쪽에는 무엇이
있어서 지나가는 차량에 치어 죽을 수도 있는 양지쪽을 향하여 목숨을 걸고 가고 있는 것일
까?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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