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드디어 찾았어요!"

큰가방 2006. 1. 8. 13:14
“드디어 찾았어요!”


“팀장 님! 찾았어요! 드디어 찾았어요!”소한(小寒)이 가까워지면서 찾아온 강한 추위가 물러갈 생각도 하지 않고 연일 그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다 오늘은 특히 더욱 거센 바람까지 불어와 평소에는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별로 손발이 시린 줄 모르던 제가 오늘은 거세게 불어오는 강한 해풍(海風) 때문에 얼굴에는 시커먼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놓고 우편물을 배달하러 다녔으나 손발이 시린 것은 어쩔 수가 없어 하루 종일 손을 “호! 호!”불며 우편물을 배달하고 우체국 사무실에 막 들어선 순간 저의 뒤를 따라 들어온


후배 집배원이 하루 종일 찬바람을 그대로 쐬고 다녔는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로 저를 보자마자 빙긋이 웃으며 자랑스럽게 저에게 던진 말입니다. “이 사람아! 얼굴에 마스크라도 하고 다니지 찬바람 때문에 얼굴이 아주 빨갛게 익었구먼! 그래!”하는 저의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무엇을 찾았다는 이야기인지 “찾았어요! 찾았어!”라는 소리만 반복합니다. “그래! 무엇을 찾았는데?” “지난번에 팀장님이 찾지 못하고 반송시킨 우편물 있지 않습니까? 오늘 드디어 그 주인공을 찾아냈단 말입니다~아!”


“그랬어? 어떻게 찾았는데?” “지난번에 팀장님이 물어보지 못한 집이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오늘 그 집에서 우연히 사람을 만났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바로 우편물이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찾아냈어요!”하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난주 화요일(작년 12월27일) 아침 그날 배달할 우편물을 구분하다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발송한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780번지 박영님’이라고 수취인의 주소와 이름이 쓰인 우편물을 보았는데 수취인의 이름이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위의 동료직원들에게 “혹시 박영님 씨라고 들어본 사람 있어요?”하고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하여 서당리 780번지를 사용하는 연동마을에서 우편물 주인을 찾기로 하고 우체국을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연동마을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마을 청년 몇 사람에게 “혹시 박영님 씨라고 들어보셨어요?”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글쎄요? 오늘 처음 들어본 이름이네요!” “그럼 혹시 이 마을로 새로 이사 오신 분은 없나요? 우편물이 의료보험 카드 인 것 같은데 새로 이사 오신 분에게 발급해 드리는


의료보험 카드인 것 같거든요.” “집배원 아저씨! 혹시 은행(銀杏)마을 박지수 씨 할머니 이름 아닐까요? 할머니 성함이 박영님 씨라고 하는 것 같던데!” “그 할머니 이름은 박영님 씨가 아니고 박경님 씨거든요. 그리고 번지도 780번지가 아니고 426번지를 쓰고 있거든요.” “그래요? 그럼 누구인지 잘 모르겠네요. 우리 마을로 누가 새로 이사를 오셨다면 저희들이 모를 리가 없지요. 그리고 누가 시골마을로 이사를 오기나 하겠어요?”하는 대답을 듣고 “정말 그렇겠네요!”하고 가게를 나와 연동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할머니! 혹시 서당리 780번지 박영님 씨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니! 못 들어본 이름인디 무엇 땀새 그래?” “박영님 씨 앞으로 우편물이 왔는데 박영님 씨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본 이름이거든요. 그래서 혹시 할머니께서 알고 계시나 해서요.” “우리 집이 780번지를 쓰기는 쓰고 있는디 박영님 이라는 이름은 나도 첨 들어본 이름인디 나도 잘 모르것네!” “어르신 혹시 박영님 씨라고 들어보셨어요?” “박영님? 몇 번지에 사는 박영님 인디 그런가?” “여기 주소에는 서당리 780번지 박영님 씨라고 되어있거든요.”


“780번지 박영님? 우리가 서당리 780번지를 쓰기는 쓰고 있는디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본 이름인디 저기 우리 동생 집이도 780번지를 쓰고 있고 우리 뒷집이서도 780번지를 쓰고 있응께 누구 집인지 알것는가? 잉!” “혹시 이 마을에 새로 이사 오신 분은 안계신가요?” “아이고! 이런 촌구석으로 누가 이사를 오기나 하것어? 그라고 이사를 오문 우리가 금방 알제~에! 알 그런가?” “정말 그러시겠네요!”하고 이집에서 저 집으로 박영님 씨를 찾으려고 아무리 물어도 박영님 씨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마을의 이장(里長)님을 만났습니다. “이장님! 혹시 서당리 780번지 박영님 씨라고 들어보셨어요?” “780번지 박영님 씨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에 면사무소를 들렸더니 박영님 씨 주민세가 미납되었다고 받아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 아직 받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래요! 그런데 저기 저 집에서도 780번지를 쓰고 있던데 혹시 사람이 살고 있지 않나요?” “저 집에서도 780번지를 쓰고 있기는 한데 지난번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시다 할머니 몸이 안 좋아


서울서 자식들이 모셔간 뒤로 아직 사람이 안 돌아왔어요. 그리고 옛날에는 사람들이 마을로 전입신고를 하려면 마을의 반장이나 이장을 찾아와 ‘나 이 마을로 전입신고를 하려고 합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전입신고를 하니까 이름만 들어도 금방 누구인지 알 수 있는데 요즘에는 반장이나 이장을 찾을 필요가 없이 면사무소로 찾아가 ‘서당리 몇 번지로 전입신고 해 주세요!’하고 말 만 하면 바로 전입신고가 되니까 누가 우리 마을로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리고 겨우 사람을 알만 하면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버리기 때문에


옛날부터 살고 있는 사람들 외에는 누가 왔는지 갔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옛날 제도가 조금 불편한 제도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좋은 제도인데 요즘은 너무 간편한 제도만 찾다보니 때로는 그 때문에 오히려 불편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정말 그러시겠네요! 이장님 고맙습니다.” “아니요! 도움을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하는 연동마을 이장님의 말씀을 듣고 할 수 없이 그 우편물을 반송을 시키고 말았는데 이번 주 초 건강공단에서 또 다시 그 우편물을 재 발송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연동마을에서 우편물 주인을 찾았던 이야기를 후배 직원에게 해주었는데 그 직원이 마을의 이장님과 제가 이야기하였던 비어있던 집에서 나오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 문의하였더니 그 분이 박영님 씨라는 대답이었고 한 달에 1번 정도 집만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우리의 옛 이야기가 있듯이 비록 한달에 한번 정도 집만 둘러보고 서울로 돌아갈지라도 마을사람들과 인사라도 나누면 더 좋은 인연이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2005년 12월 25일 촬영한 전남 보성 일림산 정상에서 바라 본 득량만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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