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이상한 이름

큰가방 2006. 2. 27. 22:12
이상한 이름


엊그제 지나가며 내렸던 비가 살그머니 봄을 내려놓고 갔는지 요 며칠동안 마치 포근한 봄날 같이 무척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행복을 배달하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우체국 문을 출발하여 천천히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는데 시골마을로 향하는 한적한 도로가에는 지난겨울 매서운 추위와 강한 눈보라를 이겨내고 언제나 그 자리에 꿋꿋이 서있던 왕 벚꽃 나무 가지에 어느새 조그만 꽃눈들이 조금씩 머리를 내밀며 머지않아 다가올 봄을 알리기 위하여 열심히 준비하는 듯 보이고 있으며


길게 이어지는 도로가의 양지쪽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파란 풀들이 파릇파릇한 조그만 싹을 내놓고 지나가는 저에게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언제보아도 늘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들판 양지쪽에서 할머니 한분께서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천천히 다가가“할머니! 지금 뭐하고 계세요?”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쑥 캐고 있어! 요새 날이 따수운께(따뜻하니까) 쑥이 그새 많이 커부렇단께!”하시며 빙긋이 웃으십니다. ‘옛날에 봄이 찾아오면 아가씨들이 쑥을 캐러 다녔다는데


요즘 시골에 아가씨들이 귀하다 보니 할머니들께서 쑥을 캐러 다니시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저 혼자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지등마을입니다. 그리고 지등마을 중간쯤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에 카드회사에서 발송한 등기우편물 한통을 배달하려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 현관문을 열고“계십니까? 계세요?”하고 주인을 부르자 할머니께서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시더니 “으째(왜) 그라고 불러싸~아?”하십니다. “할머니! 아드님께 카드회사에서 등기편지가 왔네요.


지금 아드님 안계신가요?” “우리 아드~을? 우리 아들은 항상 바쁘제~에! 지금 우리 며느리하고 으디(어디) 나가고 없어! 그란디 뭣이 왔다고?” “카드회사에서 등기편지가 왔다니까요!” “카드에서 등기가 와~아?” “예! 할머니” “그란디 카드가 뭣이여? 그것이 좋은 것이여? 나쁜 것이여?” “할머니! 카드는 은행에서 현금도 찾을 수 있고 슈퍼 같은 곳에서 현금 없이 물건도 살수 있는 거예요! 아시겠어요?”하며 등기우편물을 할머니께 건네 드리며 “할머니! 이 카드는 잃어버리면 큰일 나니까 잘 간수하셨다가


아드님 오시면 전해주세요! 아시겠지요?”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우편물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시더니 “아니? 편지에 돈은 안 들고 무슨 뻣뻣한 것 만 들어있네!” “할머니! 그게 카드가 들어있어서 그러는 거예요!” “카드? 카드가 뭣 인디?” “봉투 속에 들어있는 카드로 슈퍼 같은 곳에서 현금 없이 물건도 살 수 있고 또 은행에서 현금도 찾아 쓸 수 있다고 금방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까 잃어버리면 큰일 나니까 잘 간수하셨다 아드님께 꼭 전해주셔야 해요! 아시겠지요?” “잉! 알았어!”


“그런데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 이름? 이름은 알아서 뭣할라고?” “카드는 귀중한 등기편지니까 여기에 받은 사람 이름을 적어야 하거든요.” “그라문 그냥 우리 아들 이름을 적제 뭣 할라고 늙은이 이름을 물어싸~아!” “할머니! 그러면 안 되거든요. 여기 편지 받은 사람 이름을 적어야 하니까 그래요.” “내 이름? 이름적지 말고 그냥 가문 안돼야?” “그러면 안 되니까 할머니 성함을 묻는 거예요.” “내 이름이 하다 이상해서 갈쳐(가르쳐)주기 싫은디!”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 데요?”


“금메 내 이름이 이상하단께 그래쌓네.” “할머니 이름을 알아야 이상한지 안 이상한지 알 수 있을 것 아니에요!” “내 이름을 꼬~옥 알아야 쓰것어?” “정말 알아야 한다니까요~오!” “내 성은 이가여 그란디 꼭 이름을 알아야 쓰것어?” “할머니도 참! 이름 좀 가르쳐주기가 그렇게 싫으세요?” “내 이름이 하다 이상해서 그런당께! 그란께(그래서) 갈쳐(가르쳐)주기가 싫단께!” “할머니 그러지 마시고 말씀해보세요! 저 지금 무척 바쁘단 말이에요!” “그냥 우리 아들 이름 적으문 쓰껏인디 그래 싸~아!


내 성은 이가여! 그라고 이름이 이상해서 갈쳐주기가 싫은디!”하시며 잠시 머뭇거리다 마치 체념이라도 하신 듯한 표정으로 빙긋이 웃으면서“이름이 팽이여! 이팽이!” 하십니다. “할머니! 정말 이름이 이팽이 씨에요?” “내 이름이 아저씨가 들어도 이상하제?” “아니요! 그런데 다른 예쁜 이름도 많은데 왜? 히필 할머니 이름을 팽이라고 지었을까요?” “원래 이름은 팽이가 아니여! 그란디 시집와서 이름이 팽이로 바꿔져 부렇어!” “그러면 할머니 원래 이름은 어떻게 되시는데요?”


“원래 내 이름이 이수연인가 뭣인가 그랬는디 인자는 잊어버려서 생각도 잘 안 나네!” “할머니 원래 예쁜 이름이 있었는데 왜? 시집오셔서 이름을 바꾸셨어요?”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또 다시 빙긋이 웃더니 “내가 열일곱 살에 이리 시집을 왔는디 그때는 친정 동네 이름을 따서 댁호(宅呼)를 부르는데 우리 친정동네 이름이 팽이골이라고 팽이 떡(댁)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드만 그란디 어느 날 이 동네 이장(里長)이 내 이름을 물어봐서 으째(왜)그러냐고 물었더니 ‘혼인신고를 해야 된다’고


그란디 암만 여루와서(부끄러워서) 이름을 갈쳐 줄 수가 있어야제! 그래서 말을 안 하고 있었는디 몇 번 물어보다 안 물어보데! 그래서 나는‘이름을 안 갈쳐줘도 괜찮한갑다’그랬는디 나중에 알고 본께 이장이 우리 친정동네 이름을 내 이름으로 혼인신고를 했든 갑드만 그래갖고 내 이름이 이팽이로 바꿔져 버렸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혼인신고를 하려면 호적등본 같은 것도 필요할 텐데 그런 것도 없이 혼인신고를 하셨단 말씀이세요?” “금메 나는 잘 모르제! 그때는 이장들이 다 알아서 하든 세상인께!”


“그것 보세요! 할머니께서 자꾸 이름 가르쳐주기를 꺼려하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아시겠어요?”하였더니“진짜 그래서 우리 동네 이장이 내 이름을 바꿨을까?”하고 할머니께서는 또 다시 빙긋이 웃고 계십니다. 열일곱 살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이장님께 이름을 알려드리지 못하는 바람에 이수연이라는 예쁜 이름 대신 이팽이라는 할머니 친정마을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할머니께서 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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