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대장 비위 맞추기

큰가방 2006. 3. 11. 18:40
대장 비위 맞추기


경칩(驚蟄)이 넘어서자마자 연일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햇볕 잘 드는 양지쪽에 언제 자라났는지 파랗고 싱싱한 쑥들이 예쁜 자태를 자랑하며 봄의 향기를 멀리 전해 달라는 듯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해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천천히 지나가는 저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시골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양지바른 언덕에 젊은 아주머니께서 이제 갓 돋아난 봄나물 냉이를 캐 바구니에 담으면서 어린아이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무척 정답게 보입니다. “봄이란 정말 좋은 계절이구나!


우리의 마음도 늘 봄과 같으면 좋겠다!”는 것을 느끼며 제가 도착한 마을은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원서당 마을입니다. 제가 원서당 마을 가운데 쯤에서 신문 한통을 배달하려고 오토바이와 함께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집 마당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강아지 보다  작은 하얀색 발바리 두 마리가 뛰쳐나오더니 ‘월!~월!~월!’짖으며 저의 오토바이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합니다. “이 집은 늘 개를 묶어놓고 기르는 집인데 오늘은 왜? 개를 풀어 놓았지? 개 묶는 것을 깜박 잊으셨나?”하는 생각을 하며 개들을 향하여


“나는 반가운 사람이니까. 이제 그만 짖어라! 알았지?”하였으나 개들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제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월!~ 월!~ 월!”하고 짖어대고 있는데 바로 그때 할머니께서 기다란 대 빗자루를 들고 나오시더니 “인자(이제) 알았은께  그만 짖어! 그만!”하고 개들을 나무라는데 개들은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그저 저를 보고 열심히 짖어대고 있습니다. “아니 이것들이 그만 짖으라문 그만 짖제! 반가운 사람이 오나 안 반가운 사람이 오나 사람만 오문 짖고 야단이여!


인자 그만 좀 짖으란 말이여!”하고 큰소리로 개들을 나무라지만 개들은 여전히 제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짖는 것을 멈추지 않자“에라 이 써근 게 에끼들아!”하시며 개들을 쫓아가더니 갑자기 대 빗자루를 하늘 높이 쳐들어 개들을 향하여 사정없이 내리치시자 할머니의 행동에 놀란 개들은 얼른 자기 집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머리를 내밀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할머니! 그냥 놔두세요. 개들도 밥값하려고 짖고 있는데 그렇게 큰 빗자루로 개를 때리면 되겠어요?”


“아니! 안돼야! 누구 사람이나 한 사람 오문 우추고(어떻게) 그라고 귀신같이 알고 쫓아나가 짖어 싼가 몰르것어! 어쩔 때는 미안해 죽것어! 그란디 으째(왜) 개들이 사람만 보문 이라고 짖어 싸까?” “할머니 개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겠어요? 밥 먹으면 집 보는 것이 개들이 할일인데 그렇게 짖는다고 때리시면 다음에 도둑이 들어와도 안 짖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이고! 촌구석에 도둑은 무슨 도둑이나 있겠어?”하시더니 다시‘으르렁!’거리는 개들을 향해 “그나저나 인자는 그만 좀 짖으란 마다!”하시며


다시 한번 개들을 향해 빗자루로 내려치십니다. “할머니 그냥 짖으라고 놔두시라니까요! 그래도 제가 오면 제일 먼저 쫓아 나와 반갑다고 인사하는데 개들을 그렇게 나무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안 그래요?” “금메 그라기는 그라네! 그란디 오늘은 뭣을 갖고 왔어?” “어르신께 신문이 왔네요! 할머니가 받으실래요?” “그래 이리주고 가!”하셔서 할머니께 신문을 넘겨드리고 막 대문 쪽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방문이 ‘덜컹!’열리더니 이제 4살 먹은 할머니의 손자가 마루바닥을‘쿵! 쿵!’거리며 뛰어나와



할머니를 한번 슬쩍 쳐다보더니 “할머니 나빠!”하면서 할머니께서 건네는 신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루바닥에 드러눕더니 발로 마루를 쿵쾅거리며 “으~아~앙!”하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방안에 있던 아이의 엄마가 깜짝 놀란 얼굴로 방에서 나와“애! 왜? 그래? 갑자기 왜? 우는 거야?”하고 물어도 아무 대답 없이 아이는 그저“아~아~앙!”하며 더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아니? 애가 왜? 저렇게 우는 거지? 아가야! 왜? 갑자기 우는 거냐? 응?”하고 제가 물었으나 아이는 여전히


“아~아~앙!”하고 큰소리로 울다“할머니! 나빠!”하더니 할머니께서 건네는 신문을‘획!’낚아채더니 멀리 마당으로 던져버립니다. 그러자 당황한 엄마가 “아니? 애가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너 왜? 그러니? 왜? 그래? 매를 좀 맞으려고 그러는 거야?”하고 물어도 아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더 큰 소리로“아~앙~앙!”하더니 이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표시인지 마루바닥을 발바닥으로 더 크게“쿵! 쾅!”거리면서 할머니의 무엇이 나쁘다는 것인지 자꾸 ‘할머니 나빠!’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참!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왜? 갑자기 아이가 저렇게 할머니에게 나쁘다고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애~에! 왜? 우는 거야? 그리고 할머니가 왜? 나쁘다는 거야? 말을 해야지 말은 안하고 그렇게 울기만 하면 되겠니? 엉?”하는 엄마의 말씀에도 “아가야! 너 이제 유치원에 가야지? 그런데 그렇게 우는 아이는 유치원에서 오지 못하게 하는 거야! 알았어? 아저씨가 유치원 선생님께 일러줄 거야! 그래도 되겠니?”하고 은근히 협박(?)하는 저의 말에도 아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큰소리로 “으~아~앙!”하고 울고 만 있는데 그 순간 아이가 던져버린 신문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참! 그렇구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하고 아이가 던져버린 신문을  주워들어 오토바이에 싣고 대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할머니께서 “아제! 으째(왜) 신문을 다시 가져가?” “다~아! 이유가 있어요. 할머니 잠시 기다리세요!”하고 눈을 찡긋한 다음 대문 밖으로 나갔다 다시 ‘빵~빵!’소리를 내며 마당으로 들어와 “우편물 왔습니다. 빨리 나와 받으세요!”하였더니 마루바닥을 쿵쾅거리며 울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신발도 신지 않고


얼른 토방으로 내려와 “아찌! 감사합니다~아!”하고 신문을 받더니 눈물까지 흘리며 서럽게 울던 아이가 어느새 빙긋이 웃기 시작합니다. “내가 신문을 받았다고 그랬었구나! 아이고~오! 우리 집 대장 비위 맞추기 힘들다!”하시며 빙긋이 웃는 할머니 “그럼 할머니 제가 신문 받을게요! 하고 말을 해야지! 그렇게 울기만 하면 되겠니?”하시는 아이의 엄마 “애들은 원래 그래요. 우편물도 받는 사람이 받아야지 아무나 받으면 되나요? 그렇지?”하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아이는 그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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