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간 소포
“여보세요! 김금옥 할머니 핸드폰인가요?” “뭣이라고? 잘 안 들려!” “혹시 김금옥 할머니 아니세요?” “김금옥 이는 맞는디 누구여?” “할머니! 저 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할머니께 소포가 하나 왔는데 집에 계신지 안 계신지 몰라 전화 드렸어요! 지금 집에 계세요?” “아니 나 지금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여!” “그럼 어디 계시는데요?” “이~잉! 지금 순천서 벌교 지나서 차타고 가고 있어!” “그러세요! 그럼 낮 12시 경에는 집에 도착하시겠네요?”
“잉! 그란디 왜? 그래?” “할머니께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니까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집에 계신지 안계신지 몰라 전화 드렸어요! 제가 낮 12시경에 소포가지고 갈 테니까 집에 도착하시거든 어디 나가시지 마시고 집에 계세요! 아시겠지요?” “이~잉! 알았어!”하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오늘 배달해야 할 우편물 중 소포 한 개가 부산에 살고 있는 자녀들에게 다녀오시느라 한달이 넘도록 계속해서 집을 비우고 계시는 할머니께 도착하여‘혹시 집에 돌아오셨나?’하는 생각에 소포의 표면에 적혀있는
휴대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였더니 할머니께서 이제 집으로 돌아오고 계신다는 답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배달하여야 할 우편물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가득 싣고 우체국 문을 천천히 나서려는데 그때까지 어두컴컴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3월 달로 접어들면서 지금까지 비다운 비가 한번도 내린 적이 없어 봄 가뭄 때문에 농민들이 무척 애가 타는데 오늘은 다행히 반가운 단비가 내리는 구나! 기왕에 내리는 비! 해갈이 될 수 있도록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안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리는 길!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왕 벚꽃 나무의 꽃망울이 촉촉이 내리는 봄비에 젖어 한들한들 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저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데 나무 밑 논둑에서 산비둘기 두 마리가 갑자기‘후드득’하늘 높이 솟아오릅니다. ‘산비둘기야! 너희들이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는데 빨간 오토바이 소리 때문에 깜짝 놀랐나 보구나! 미안해서 어쩌지?’하는 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비둘기 두 마리는 그저 멀리 건너편 산으로 훨훨 날아가 버립니다. “때로는 작은 오토바이 소리도 남의 소중한 행복을 깨뜨릴 수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며 달려온 곳은 제가 오전에 전화하였던 할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전남 보성 회천면 회령리 시장(市場)입니다. 시장에서 우편물 배달을 마친 저는 김금옥 할머니 댁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할머니께 도착한 소포를 적재함에서 꺼내 할머니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할머니! 저 왔어요! 어디계세요?”하고 할머니를 불러보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어? 이상하다! 할머니께서 분명히 기다리신다고 했는데 어디 가셨지?”하고 또 다시“할머니~이!”하고 큰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역시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봅니다. “저 집배원입니다. 지금 할머니 댁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안 계시네요!” “나~아? 지금 밭에 있어! 금방 갈 것 잉께 쬐그만 기달리고 있어! 잉!”하시더니 어느새 할머니께서는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아니 아저씨가 낮때 온다 그래서 밭에 갔는디 그새 와부렇네!”하시며 빙그레 웃으십니다.
“할머니 오랜만이네요. 자녀들 집에는 잘 다녀오셨어요? 그런데 집에 오셨으면 조금 쉬시지 그새 또 밭에 나가셨어요?” “아이고~오! 말도 말어! 밭에 가본께 바람이 을마나 불었는고 감자밭에 비니루가 다 벗겨져 불고 난리가 나부렇드만! 주인이 있는 밭하고 없는 밭하고 확실히 표시가 나드랑께~에! 그래서 다시 비니루 좀 씌워놓고 오니라고!” “그랬을 거예요. 엊그제는 바람이 정말 강하게 불었거든요! 얼마나 강하게 불었던지 제가 오토바이를 제대로 타고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할머니! 소포를 보낸 사람도 할머니네요!”
“이~잉! 내가 우리 아들 집이서 뭣을 잔 갖고 와야 쓰것는디 무거워서 들고 올수가 있어야제! 그래서 소포로 보냈는디 빨리도 와부렇네!”하시며 할머니께서는 또 다시 빙긋이 웃으십니다. “아드님이 맛있는 것 사주시던가요?” “아니여! 나 묵으라고 무슨 보약을 지었다고 그러데!” “잘하셨네요! 그런데 지난번에 할머니께 울산에서 조그만 소포 하나가 왔었는데 계속해서 할머니는 집을 비우시고 또 연락도 되지 않고 해서 할 수 없이 반송을 시키고 말았거든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안 그래도 우리 딸이 내가 부산 아들집에 있는 데 전화를 했드만 내 약을 보냈는디 그냥 반려가 와 부렇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막 화를 내데! 으디 갈라문 연락을 하고 가제 연락도 안하고 갔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제~에! 뭣을 보낼라문 나한테 전화를 좀 해 보고 보내든지 말든지 해야제! 전화도 안 해보고 그냥 보내놓고 화를 내문 쓰것냐? 그라고 내 핸드폰 번호도 알고 있응께 소포에 내 핸드폰 번호를 좀 적어서 보내제 그랬냐? 그라문 우체부 아저씨들이 그냥 반려 시키것냐?
그랬드니 항상 핸드폰 번호를 안 적어도 잘 들어가서 귀찮아서 그냥 보냈다고 그라데! 으째 그라고 우리 딸이라도 멍청한지 몰것서~어!” “그러셨어요? 그러면 할머니께서 여행을 다녀오시려면 따님께 미리 전화를 하고 여행을 다녀오셨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인데 그러셨네요.” “그란디 아저씨! 우리 딸이 보낸 소포를 옆집 누구한테 맡겨놨으면 좋았을 것인디! 그라문 내가 집에 와서 찾아갖고 오문 되제~에!” “물론 그러면 좋지요! 그런데 저희들도 그것을 몰라서 우편물을 반송시킨 것은 아니거든요.
할머니께서 한 달 후에 집에 돌아오실지 아니면 두 달 후에 오실지 모르는데 어떻게 할머니의 귀중한 우편물을 남의 집에 함부로 맡기겠어요? 그리고 맡아 놓은 집에서도 4~5일 정도는 괜찮은데 한달이나 두 달이 지나면 자신이 맡아 놓은 것을 깜박 잊어버릴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서로 좋게 살았던 이웃간에 곤란한 일이 생길수도 있어요.” “아저씨 말을 듣고 본께 진짜 그라네! 그라문 우리 딸한테 반려된 내 약은 어째야 쓰까?” “그거야 따님께 다시 보내달라고 하면 되지요!
그리고 앞으로는 꼭 소포 표면에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서 보내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저희들이 할머니께 연락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때는 할머니께서 부탁하신대로 우체국에 보관하라면 보관할 것이고 누구 댁에 맡겨주시라면 맡겨드릴게요! 아시겠지요?” “이~잉! 알았어! 그나저나 아저씨 고맙소 잉! 이라고 안 성가시게 물건을 잘 갖다 줘서!”하시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광주 광역시 금남로 지하철 역사에 게시 될 저의 시(詩) 파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