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어떤 아버지의 IMF

큰가방 2004. 7. 3. 17:36

어떤 아버지의 IMF

2000/03/12

오늘도 저는 이 길을 달려갑니다. 어제도 그제도 지나왔던 그 길을 수많은 사연을 싣고 오
토바이와 함께 달려갑니다. 득량면 삼정리 야트막한 고갯길 할아버지 한 분이 땔나무를 손
수레에 가득 싣고 힘들게 끌고 가시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천히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는 오토바이를 길옆에 세워 놓고 “할아버지 제가 손수레 끌어다 드릴게
요!" 하였더니 할아버지께서는 "바쁜디 미안해서" 하시며 사양을 하십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런 시간조차 없겠습니까? 할아버지 손수레 이리주세요!“ 그리고 고갯길을
손수레를 끌고서 천천히 넘어갑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이 안 계신가요?" 하고 묻자
할아버지께서는 "아니! 자식놈이 둘이나 있어!" 하십니다. "할아버지 그러면 자제 분들에게
연탄 부엌이라도 하나 놔주시라고 하시지 그러십니까? 그러면 이렇게 고생을 안 하셔도 될
텐데!" 하였더니 할아버지께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시며

 

"아! 자식놈이 둘이나 있으면 뭣해 그 놈의 아엠픈(IMF)가 뭔가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서
집구석에서 한 두 달 있드만 취직하러 간다고 나간지가 서너 달이 돼얐는디도 아무 소식이
없어 내가 새끼들을 잘 가르치도 못하고 그래놔서 할말도 없지만 그래도 이놈들이 으디서
살고 있는지 어짠지 소식이라도 있어야제!" 하십니다. "그러세요 할아버지는 그럼 지금 혼
자서 살고 계세요?“ 하고 물었더니

 

"응 재작년에 할망구가 죽었어 그 뒤로 혼자서 살고 있어!" 하십니다. "혼자서 사시려면 힘
드시겠는 데요?“ 하였더니 "나는 괜찮해 나야 이라고 쪼그만 움직이면 그래도 불이라도 때
고 밥은 안 굶고 묵고 살제만 자식놈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있어야제!" 하십니다.
"그러면 아직까지 자제 분들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습니까?“ 하였더니 "금메 그란단 마시
얼렁 좋은 직장을 잡아야 되껏인디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문  아직도 취직을 못한 모
양이여!"

 

하시며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쉬고 계십니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벌써 고갯길
을 넘어서면서 "예! 그래요 빨리 취직을 해서 할아버지께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
다! 할아버지! 여기까지 왔으니까 댁에 까지는 혼자서 가실 수 있겠습니까?“ 하였더니 할아
버지께서는 "응 그래 고마워 으짜까 바쁘신디 이렇게 신세를 져서 정말 고마워!" 하십니다.
"할아버지 이제 경기도 풀린다고 하니까 아마 자제 분들도 곧 취직을 하실 겁니다. 너무 걱
정하지 마세요!" 하였더니 할아버지께서는

 

"응 그래 고마워!" 조심해서 잘 가게!" 하시며 다시 손수레를 끌고서 집으로 돌아가십니다.
아무리 자식이 나이를 먹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자식은 언제나 자식인가 봅니다. 자식 걱정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는 할아버지를 모습을 보고 저는 아! 아직도 IMF는 끝나지 않았구나!
라는 것을 느끼며 목이 메어 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부디 그 할아버지의 자제 분들
이 할아버지의 걱정이 없도록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였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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