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큰가방 2004. 7. 30. 20:50
 

몇 년 만에 여름휴가를 내고서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해마다 휴가철이 시작되면 동료직원들이 휴가를 내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직원들이 휴가를 내어 비우는 자리를 메워 이리저리 우편물 배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여름휴가를 내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정작 제가 여름휴가를 낼 차례가 오면 이미 휴가철은 끝나버리는 바람에 한번도 여름휴가를 제대로 내 본적이 없는 것 같아 금년에도 휴가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동료직원들의 권유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가를 내면서 생각하기를


이번에는 영암에 계시는 작은아버님을 찾아뵙고 또 어머니 산소에도 들려보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십여 년 전 저의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이 자꾸 야외로 나가자고 보채는 바람에 억지로라도 한번 야외를 다녀오고는 하였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커서 그런지 야외로 나가자는 사람도 없고 저 역시 야외로 나가기도 귀찮고 하여서 작은댁을 다녀오기로 하였는데 그러나 매일처럼 계속되는 폭염 때문에 감히 여행을 나설 엄두도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또 작은댁을 가게 되면 아무래도


숙모님의 신세를 져야하기 때문에 이제는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가 되신 숙모님께서 귀찮으실까 봐 작은댁은 조금 날씨가 선선해지면 다녀오기로 하고 그냥 집에서 쉬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풍기를 틀어놓고는 대자리위에서 누워있으려니 잠시 저의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몇 년 전 IMF가 처음 우리 곁에 찾아 왔을 때입니다. 그때 제가 20년 근속 특별휴가 라는 것이 있어서 집안일을 하려고 인부를 구해놓고는 4일 동안 여름에 휴가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부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저의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시는 겁니다.


“아이! 큰 아베야!” 그래서 “왜요! 어머니!” “아니! 너는 오늘 우체국에 출근 안 해도되냐? 왜이라고 출근은 안하고 일만 하고 있냐?” 하시기에 “예! 오늘 집안일을 좀 하려고 연가 냈어요!” 하였더니 어머니께서는 “응! 그라냐!” 하시며 안심하신다는 표정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역시 출근은 하지 않고 인부들과 일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저의 어머니께서 더욱 근심스런 표정으로 저를 부르십니다. “아이! 큰 아베야! 아니 오늘도 출근 안 해도 된다냐? 으째 그라고 출근은 안하고 일 만 하고 있어~어?” 하십니다.


“어머니 집 안 일을 좀 하려고 연가 냈다니까 왜? 자꾸 그러세요?” 하였더니 “오~오! 그라냐?” 하시며 안심하신 듯한 표정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 아침부터 인부들과 마지막 사용하지 않은 폐 축사(畜舍)를 철거하여 정리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저의 어머니께서 “아이! 큰 아베야! 아니 오늘도 출근 안 해도 된다냐? 아니 으째서 출근할 사람이 출근은 안하고 집이서 이라고 일만하고 있어? 우체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하고 물으십니다.


저는 그때서야 저의 어머니께서 심각한 얼굴로 제가 우체국에 출근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신 뜻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IMF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TV를 통하여 보도가 되면서 저의 어머니께서는 제가 한번도 휴가를 내고 집에서 쉬어 본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휴가를 내었노라고 직장에 출근을 하지 않고 일만 하고 있으니 “혹시 저 애가 직장에서 짤렸나?”하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왜? 제가 우체국에서 짤린 것 같아서 그러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모레부터 다시 출근할거에요!” 하였더니 그때서야 안심이 되신다는 듯 빙그레 웃으시며 “응 그라냐! 알았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새삼스럽게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 것은 갑자기 어머니 얼굴이 보고 싶어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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