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두 번째 걸려온 전화

큰가방 2004. 7. 24. 20:52
 

오늘은 초복(初伏)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복날이지만 금년 여름의 초복 날은 아침부터 옷이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될 정도로 굉장히 무더운 날씨로 변해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하여 정리를 하고 있는데 조그만 소포 하나가 눈에 뜨입니다. 그런데 소포 수취인의 주소가 보성읍 용문리 성디 마을 이경순이라는 이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 이상하다? 주소는 용문리 성두 마을을 잘못 쓴 것 같은데 이경순이라는 이름은 처음인데 누구지?" 하고서는 동료직원들에게 묻습니다.


"누구 성두 마을 이경순 씨를 아는 사람?" 하였더니 "이경순 씨는 아마 성두 첫 골목 네 번 째 집 아주머니 이름 같아요! 그 댁에 가서 물어보세요!" 하는 동료 직원의 말을 뒤로하고 우체국 문을 출발합니다. 날씨는 무더운 여름 날씨지만 시골 마을로 향하는 들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매미의 쓰르라미는 잠시 동안이라도 더위를 잊게 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벌써 성두 마을의 첫 골목 네 번째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계세요? 이경순 씨 계세요?" 하고 큰소리로 주인을 불러봅니다.


그러나 대문 밖에서 보기에는 창문이 열려있어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이상하다! 창문이 열려있는 것으로 봐서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대답이 없지?" 하고는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집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보니 자물쇠가 잠겨있습니다. "아니! 문단속을 하려면 잘 하시지! 창문은 열어놓고 방문에 자물쇠만 채워놓으면 무슨 문단속이지?" 하는 생각과 함께 저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그나 저나 주인을 만나야 소포가 이 집 소포인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소포를 그냥 놔두고 나오기도 그렇고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바라본 소포의 발송인 주소에 발송인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발송인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런데 전화기에 신호는 가는데 한참 가다가 "고객 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어 음성사서함에!" 하는 메시지 만 들릴 뿐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소포를 다시 오토바이에 싣고 다음 집으로 향하다가 우체국 단골 주유소에 잠시 들러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고 시원한 냉수도 한 컵 마시고 있는데


동료 직원이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로 들어오더니 저를 보고는 "아니! 반장님은 웬 땀을 그렇게 많이 흘리셨어요?" "아니! 내가 땀을 흘리다니 무슨 땀을 흘려 이 사람아!" "아니 반장 님 옷을 좀 보세요! 옷이 온통땀으로 흥건히 젖어있는데 땀을 안 흘리셨다고 그러세요?" 하는 소리에 제 옷을 보았더니 어깨 위에서부터 겨드랑이 할 것 없이 저의 윗옷이 온

통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저의 동료 직원의 옷도 저 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윗옷이 상당히 젖어있습니다.


"나도 옷이 많이 젖었지만 자네는 어떻고! 자네 옷은 젖지 않았다고 생각되는가?" 하였더니 "저도 옷이 젖었지만 그래도 반장 님 보다는 덜하지요!" "이 사람아! 옷이덜 젖었든 더 젖었던 젖기는 마찬가진데 나보고 옷 많이 젖었다고 나를 나무라면 되겠어! 사람도 많은 곳에서! 나 기 죽일 일 있는가?" 하였더니 주유소의 아주머니께서 웃음 참지 못하고 연신 킥킥 거리십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 입니다!" 하였더니 이상하게 전화는 금방 끊어져 버립니다.


"참! 싱거운 사람도 다 있다! 전화를 잘못 걸었으면 잘못 걸렸다고 이야기나 하고 끊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다음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거는 순간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합니다. "예!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 입니다!" 하였더니 맑고 상냥한 서울 말씨의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하는 겁니다. "아니 전화를 걸어놓고 말씀하라니? 무슨 말씀을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여보세요! 몇 번으로 전화하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좀 전에 저에게 전화하셨지요? 저의 전화에 전화번호가 찍혀있어서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 하고 전화 드리는 거에요!" 하기에 "아! 방금 전에 소포 때문에 전화를 했어도 받지 않던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저는 전남 보성우체국 집배원 류상진 입니다. 전화를 드린 것은 다름이 아니고 보성 성두 마을 이경순 씨에게 소포를 보내셨지요? 그런데 이경순 씨 댁이 어디인지 정확히 몰라서 전화를 드린 겁니다!" 하였더니 "아! 우체부 아저씨세요? 날씨도 더운데 수고가 많으시네요!


저의 여동생이 결혼해서 보성에서 살고 있는데 책이 필요하다고 해서 구해 보냈는데 동생이 사는 곳 번지를 몰라서 그냥 동생이 불러 준대로 주소를 적어서 보냈거든요! 그런데 찾지 못하셨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날씨도 더운데 고생을 시켜드려서! 저의 여동생 시아버님이 김영봉 씨라고 하는데 몇 년 전에 돌아 가셨거든요! 그래서 돌아가신 분 이름을 쓰기가 그 래서 그냥 동생 이름만 적어서 보냈어요! 그런데 혹시 김영봉 씨라고 아시겠어요?" 하고 묻습니다. "예~에! 그러셨군요! 김영봉 씨는 저도 알지요!


옛날 경찰서에서 근무하셨던 분 말씀이지요?" 하였더니 "예! 그 분이에요!" 하기에 "아까 제가 김영봉 씨 댁에서 전화를 드렸거든요!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그냥 소포를 가지고 나왔어요! 이따 우체국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하였더니 "아저씨 정말 날씨도 더운데 죄송합니다! 두 번씩이나 심부름을 시켜서요 방금 전에 제가 전화를 했는데 신호가 가는 순간 밧데리가 다 되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어요! 오늘은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전화도 잘 안되네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하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윗옷이 온통 흥건한 땀으로 젖을 만큼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잠시 저의 직원과의 농담 그리고 두 번째 걸려온 전화 때문인지 더위는 저만치 멀리 가 있는 듯 한 화요일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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