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호박 부침개 한 장

큰가방 2004. 9. 11. 17:55
 

 

호박 부침개 한 장

2000/06/12


컴컴하던 하늘이 갑자기 천둥 번개 소리가 요란하더니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큰일 났다!" 하면서 우선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보성군 득량면 다전 마을의 정영원 씨의 집으로 들어가 “아주머니! 미안합니다만  비 좀 피했다 가겠습니다!”하였더니 젊은 아주머니께서는 "아이고! 그러셔요! 방으로 좀 들어오셔요!" 하십니다.


“아닙니다! 마루에 잠깐만 좀 앉아있다 비가 개면 가렵니다.” 하면서 마루 끝에 걸터앉아 비 내리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여 봅니다. "에이! 망할 놈의 비 1시간만 좀 늦게 오지! 지금쯤은 어디 마을 우편물 배달이 끝이 났을 텐데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깊은 상념에 젖어 있는데 갑자기 주인아주머니께서 "아저씨! 비도 오고 출출하실 텐데 이것 좀 잡숴보세요!"


하시면서 애호박을 잘게 썰어 넣은 부침개를 한 장 가져다주시는 겁니다. "비가 오면 이상하게 부침개가 맛이 있데요! 날씨가 좋으면 잘 모르겠는데!" 하시면서 가져다주신 부침개가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저의 어머니께서 검은 솥뚜껑에다 돼지비계를 발라서 부쳐주셨던 부침개를 먹던 생각을 하고는 아련한 추억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다 귀하던 시절이라서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때 어머니께서 부쳐주신 부침개만큼 맛이 있는 부침개는 없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이제는 저의 어머니께서는 연로하신 까닭에 그런 부침개는 만드실 수 없지만 그러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함께 했던 부침개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비가 갠 하늘 이제 천천히 다음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하여 출발하려고 하면서 "아주머니! 부침개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부침개를 오랜만에 먹었더니 정말 맛있더군요. 감사합니다!" 하였더니 "아이고! 아저씨 무슨 말씀이세요! 그까짓 부침개 한 장 가지고!" 하시는 아주머니의 말씀을 뒤로하고 저는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맑은 하늘의 반짝거리는 햇살을 받으며 다음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하여 출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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