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하세요!”
5월로 접어들자마자 날씨는 여름을 향하여 줄달음치듯 조금씩 무더워지고 있는데 시골들판의 물을 가득 실은 논에는 오늘도 농부들이 모심을 준비를 하는 듯 트랙타의 힘찬 엔진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오고 멀리 보이는 산에는 하루가 다르게 짙은 초록색으로 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맑고 아름다운 새들의 노래 소리가 마치 사랑하는 님을 부르는 듯 들려오고 있어 봄이 이제 절정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도 행복이 가득 담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부지런히 우편물을 배달하다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당산마을 마지막 집에 소포 한 개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가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실려 있는 라면박스 절반정도 되는 크기의 소포를 꺼내들고‘빵! 빵!’하고 클랙슨 소리를 냈더니 집 옆 밭에서 밭을 매던 할머니께서 나를 보더니 “나~아! 여깃어~어! 거가 쪼그만 있어~잉!”하며 황급히 달려오시더니 빙그레 웃는 얼굴로 “아제! 우리 집 소포 왔제?”하셨다. “아니 할머니! 소포 올 줄은 어떻게 알고 계셨어요?” “엊저녁에
우리 딸이 신발 보냈응께 받으라고 전화를 했드만 그래서 알제~에!” “그랬어요? 그런데 소포가 큰 걸로 봐서 신발만 들어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에? 그라문 또 뭣이 들었으까? 얼렁 끌러봐야 쓰것는디 가만있어 봐! 칼이 으디가 있제?”하며 여기저기 칼을 찾다 부엌으로 들어가 칼을 들고 나온 할머니께서 소포의 가운데 부분을‘푹!’찌르려고 하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할머니~이! 지금 무엇하고 계세요? 그렇게 하다 소포 속에 들어있는 신발 상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하였더니 깜짝 놀란 할머니“우메! 큰일 날 뻔했네! 그라문 우추고 해야 돼야?”하며 또 다시 빙그레 웃으신다. “이렇게 테이프만 뜯어내면 되는데 그렇게 칼로 함부로 찌르려고 하면 되겠어요?”하며 소포 둘레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뜯어내자 “오~오! 그렇구나! 나는 모른께 그랬제~에!”하며 내 등을 툭툭 치시더니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꺼내자 빨간색 할머니 구두 한 켤레와 검은색 영감님 구두 한 켤레가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와! 구두가 정말 예쁘네요!
구두가 상당히 비싼 구두인가 봐요?” “몰라! 우리 딸이 그냥 사서 보낸다고 했응께!” “할머니! 따님에게 이렇게 예쁜 구두 선물 받았으니 한턱내셔야 되겠네요! 구두 한번 신어보세요!” “참말로 그라까? 그란디 내 발이 더러워서” “발은 털고 신으면 되지요!”하는 나의 성화에 못이긴 척 할머니께서는 구두를 신어보더니 “발이 참 편하고 좋네~에!”하며 연신 함박웃음을 웃으신다. “그런데 할머니! 새 구두는 그냥 신으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지요?”하며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상하다고 느낀 할머니께서 “으째 그냥 신으면 안 되야?” “잘못하면 부정 타는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먼저 액땜을 하고 구두를 신으셔야 하는 거예요!”하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논을 다녀오셨는지 장화를 신은 영감님께서 마당으로 들어오시더니 “아니?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하고 물으셨다. “어르신! 따님에게 구두가 왔는데 정말 예쁘고 좋네요.”하였더니 할머니께서 “그란디 구두를 액땜하고 신어야 한다 그라요!” “구두를 액땜하고 신어?
그럼 말은 처음 들어보는 말인디!” “어르신 제가 시키는 대로 하면 액땜이 되거든요.” “우추고(어떻게) 해야 된디?” “먼저 발을 깨끗이 씻은 다음 양말을 신고 그 다음에 구두를 신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할머니하고 똑 같이 하셔야 효과가 있어요. 그리고 두 분이 손을 잡고 마을을 한바퀴 빙 돌고 오시면 액땜이 되어서 앞으로 자녀들이 하려던 일도 잘 풀리실 거예요! 아시겠지요?” “그랑께 발 씻고 양말신고 구두신고 둘이 손잡고 동네를 한바꾸 돌고 오라 그말이제? 그라문 액땜이 된다고!”
“예! 바로 그거예요! 그런데 동네를 도실 때는 반드시 두 분이 손을 잡고 돌아야 효과가 있어요. 만약에 혼자 도시면 더 부정이 타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아시겠지요?”하는 말에 “애기 아부지! 그라문 우리 얼렁 손발 씻고 양말도 새로 신고 손잡고 동네 한바꾸 돌고 옵시다. 애기들에게 좋다 그란디 안하문 쓰것소?”하는 할머니 말씀에 영감님은 빙긋이 웃고만 계셨다.
*더위를 녹이는 데는 아이스크림이 최고겠지요? (전남 보성 회천면 동율리 우암 해수욕장 근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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