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고마운 청년

큰가방 2007. 7. 24. 20:49
 

고마운 청년


“오늘은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중부지방에는 많은 비가 예상되며 남부지방에도 비가 내리는 지역이 많겠으니 비 피해입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 기온도 어제보다 매우 높아 전국적으로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가 예상됩니다.”라는 기상청의 예보처럼 마치 찜통 같은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오늘 배달해야 할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가득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 도중에도 얼굴과 등으로 흐르는 땀은 쉬지 않고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데


시골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 잡은 고추밭에는 어느새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훨씬 굵은 고추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조금씩 붉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엊그제 장마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끝나가고 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시작 되겠구나! 금년에는 예년에 비해 훨씬 무더운 여름이 될 거라는데 그러나 8월 한 달만 잘 견뎌내면 여름은 끝나겠지!”하고 위안을 삼으며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서동마을에 도착하여 마을 아래쪽에 살고 있는 영감님 댁에


내용물이‘과자’라고 적어진 조그만 소포하나를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갔더니 영감님께서는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낮잠을 주무시고 계셔서 “어르신! 소포 왔으니까 잠깐 나와 보시겠어요!”하였는데 영감님께서는 내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계속 낮잠만 주무시고 계신다. “어르시~인! 소포 왔다니까요! 잠깐 일어나보세요~오!”하고 다시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엉? 뭣이 왔다고? 소포가 왔어?” “아니 무슨 낮잠을 그렇게 큰소리를 질러도 모르고 곤히 주무시고 계세요?”


“내가 그랬는가? 날씨가 너무 더운께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막 쏟아지는구만! 그란디 뭣이 왔다고?” “경기도 성남에서 소포가 하나 왔네요!” “경기도 성남? 성남에서 소포 보낼 사람이 없는디 누가 보냈으까?” “정봉수씨가 보냈는데 모르시겠어요?” “정봉수? 모르는 사람인디 그라고 우리 애기들이 소포 보냈다고 전화도 없었는디 이상하다!” “주소와 전화번호 그리고 받을 사람 이름은 어르신이 맞으니까 일단 받으세요.” “아니여! 괜히 남의 소포 잘못 받으문 안될 것 아닌가?”


“주소와 수취인 이름이 분명한데 제가 남의 소포를 어르신께 받으라고 하겠어요? 그런 걱정 마시고 그냥 받으세요!”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것 혹시 건강보조식품 아닌가? 지난번에도 무슨 택배에서 건강보조식품을 갖고 와 사람도 없는디 놔두고 가는 바람에 반품시키느라 아주 혼이 났어! 그랑께 그냥 갖고 가!” “소포 내용물이 건강보조식품이 아니고 과자라고 적혀있는데 그러세요.” “그래도 내 것 아니문 안 받아야제! 괜히 남의 것이나 공짜 좋아하문 못쓰는 법이여!”


“어르신! 그러면 제가 소포를 풀어볼까요? 그래서 내용물이 어르신과 전혀 상관없는 것 같으면 그냥 반송시키면 되겠지요?” “그래도 된단가? 그럼 그렇게 하세!”하여 소포박스 포장을 풀었는데 박스 안에서는 노인(老人)들이 좋아하는 사탕과 초코파이 그리고 과자와 함께 노란 종이에 볼펜으로 쓴 편지 한 장. 그리고 사진 석장이 들어있었다. “어르신! 사진이 있네요. 혹시 누군지 아시겠어요?”하며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그 순간 영감님의 눈이 반짝하더니


“오~오! 이제 알겠다! 알았어! 그 사람이었구만. 참! 고마운 청년일세 그려!”하며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그 사람이 누군데 고마운 청년이라고 하세요?” “며칠 전 비가 많이 오던 날 저녁 때 젊은 청년 한사람이 나를 찾아왔어! ‘서울 어느 대학 4학년 졸업반인데 요즘 방학이라 배낭여행을 다니고 있는 중 우연히 이 마을에 들렀는데 비가 와서 오늘은 다른 곳으로 갈수가 없으니 마을회관에서 하룻밤 자고 가면 어떻겠냐?’고 그런데 나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디


아무리 젊은 청년이라고 하더라도 비 오는 날 불도 때지 않는 차디찬 회관에서 재우면 되겠는가? 그래서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재워 보냈는디 그날 밤 청년이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쌓데 그러더니 우리 집 주소를 적고 사진을 꼭 보내주겠다고 하더니 이렇게 과자까지 보내줄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벌써 십 여일이 지나서 나는 잊어 불고 있었는데 잊지 않고 이렇게 사진에다 과자까지 보내주니 고마울 뿐이지 안 그런가?”하는 영감님의 입가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봉서동 마을에서 만난 해바라기입니다.

*전남 보성 회천면 전일리 내래마을 회관 문에 붙어있는 시 한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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