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징역살이
“오늘은 강한 바람과 함께 곳에 따라 많은 눈이 내리겠으며 기온도 떨어져 아주 차가운 겨울 날씨가 예상되오니 외출하실 때는 두툼하고 따뜻한 옷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적중했는지 내가 우체국에 출근하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는 강한 바람과 함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눈보라가 휘날리기 시작하였는데 오늘 배달하여야 할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을 향하여 우체국 문을 나서려고 할 때는 눈은 멈추고 구름 사이로 간간히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전남 보성 회천면 천포리 화곡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또 다시 하얀 눈이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휘날리기 시작하였다. 내가 화곡 마을 첫 번째 집 마당으로 들어가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서 전기요금 고지서를 꺼내들고 토방에 올라섰는데 평소와 다르게 마당이나 마루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지난번에는 사람이 비어있어 마당에 잡초며 마루에 먼지가 수북하였는데 도시 아들집에 가신 할머니께서 돌아오셨나?’
하고 “할머니~이! 어디계세요?”하고 큰소리로 부르자 뒤꼍에서“누구여?”하더니 지금까지 무엇을 하셨는지 추위에 빨개진 얼굴로 나오신 할머니는 밝게 웃으며“으~응! 편지 아저씨구만! 오랜만이네! 그란디 뭣을 갖고 왔어!”하셨다. “아드님 댁은 잘 다녀오셨어요? 오늘은 전기요금이 나왔네요!” “ 내가 한두 달간 집을 비워 전기세도 쬐깐 나왔으껏이여! 으디잔 봐!” “요금이 4천 2백 원 나왔네요!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뒤꼍에서 무엇하고 계세요?”
“사람이 없응께 풀들이 말도 못하게 질어서 그것 잔 닦달하니라고!” “몸이 안 좋아 서울 아드님 댁에 가셨다면서 몸은 좀 좋아지셨나요?” “서울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해 있응께 금방 좋아지드만!” “그런데 하필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오셨어요? 기왕에 아드님 댁에 올라가신 김에 좀더 계시다 날씨가 풀어지는 내년 봄에나 내려오시지 않고?” “아이고! 말도 말어! 거가 있응께 꼭 죄도 없는디 징역살이하는 것하고 똑 같드만!” “왜요? 모처럼 며느리가 해준 식사하시고
따뜻한 방에 앉아 계시면 여기보다 훨씬 더 편할 것 같은데 그러세요?” “그것은 편한디 으디 놀러 갈 데도 없고 발걸음을 못한께 죽것드란께!”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는 경로당(敬老堂)이 있는데 그곳으로 놀러 가시지 그러셨어요?” “옛날에 살았던 아파트에는 경로당이 있어 놀러 다니고 했는디 이번에 이사한 아파트는 새로 지은 아파트라 아직 경로당이 문을 안 열었어! 그라고 으디 놀라간다고 나가서 길이나 잊어 불고 못 찾아 들어가문 으짜껏이여? 그래서 날마다 방에만 있는디 꼭 징역사는 것 같어!”
“그러면 아드님 가족 모두 아침이면 출근한다는 말씀이세요?” “아이고! 말도 말어! 아침 일찍 아들이 직장에 출근한다고 나가고 나문, 그 담에는 손지들 학교 간다고 나가제, 며느리도 맞벌이 한다고 직장에 나감시로 ‘어머니! 뭣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면 여기 전화로 시켜 드세요!’하고 나가불문 하루 종일 누구하고 말 할 사람이 있는가? 으짠가? 그래갖고 도시 사람들은 우추고 사는가 몰르것어!” “그럼 다시 내려오시니까 어떠세요?” “인자는 편하고 좋제에!
아무리 내 집이 작고 혼자 살아도 이웃에 놀러 갈 데도 있고 이라고 여그저그 돌아댕김서 일도 하고 그라문 하루가 우추고 간지도 모르고 가 분디 도시서 하루 지낼라문 꼭 죄도 없이 징역사는 것 같아서 우리 같은 사람은 아무리 해도 못 살것드만!” “그러면 방이 차가울 텐데 보일러는 돌리셨어요?” “내가 촌(村)으로 내려간다고 한께 아들이 같이 와서 지름도 넉넉하게 받아놓고‘설(舊正)에 식구들하고 내려 올란께 따땃하게 때고 있으라!’고 그라데!”하시며 어느새 환한 표정으로 웃고 계셨다.
따스한 양지 쪽에서 채소를 다듬고 계시는 노부부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