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12년간의 사랑

큰가방 2009. 2. 1. 09:26

12년간의 사랑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행복이 담긴 우편물을 가득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가는데 어디선가 별로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지나가는 바람을 타고 날아와 내 코를 자극하여 고개를 돌려 도로 건너편 밭을 보았더니 소형 덤프트럭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잘 삭은 거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뿌려대고 있었고 다른 밭에서는 많은 아낙네들이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며 금년 5월 말부터 6월 사이에 수확할 봄 감자 씨 파종에 여념이 없었다.


‘금년 감자 가격은 어떨까? 농민들이 겨울부터 부지런히 노력한 만큼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는 좋은 가격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 보며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신촌(新村)마을 김영수 댁에 등기 우편물 한통을 배달하려고 마당에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김영수 씨!”하고 큰소리로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어르신이 밖에 나가셨나?”하고 현관 왼쪽으로 돌아가 방문을 두드리며 “할머니!”하고 불렀더니 “누가 와서 불러싸~아! 거그 문이 잠가졌응께 이쪽 유리문을 열어봐!”하고 대답하셨다.


그래서 유리창문을 열고 빙긋이 웃으며“할머니! 반가운 손님이 왔으면 얼른 일어나셔야지 그렇게 누워만 계실 거예요?”하였더니 “금메 나도 일어날 수만 있으문 일어나고 싶은디 일어날 수가 없는디 으짜껏이여? 그란디 뭣을 갖고 왔어?” “부산에서 등기 편지가 왔네요!” “우리 시아제가 주민등록증하고 도장 보낸다고 연락왔드만 그것 보냈는 갑네 그란디 도장 찍어주라고?” “아니요! 도장은 안 찍으셔도 되요!” “그라문 거그 책상위로 던져 놔!”


“예! 알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하루 종일 방안에서 무엇하고 계셨어요?” “날마다 방에 누워있는 사람이 할 것이 뭣이 있것어? 그냥 드러누워 테레비 좀 보다가 라디오 좀 듣다가 하문 하루가 가제! 그란디 대문 앞에 우리 차(車)있어?” “늘 대문 앞에 세워 둔 하얀색 승용차 말씀이세요? 안 보이는데요!” “영감이 노인당에 놀러 갔는갑구만! 아이고! 내가 어서 죽어야 우리 영감이 조금이라도 편하껏인디 왜 이라고 안 죽는지 몰르것어!” “할머니~이! 오늘 따라 왜 그렇게 약한 말씀을 하세요?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시면 되잖아요!”하였더니 한숨을 ‘푹~욱!’ 내쉰 할머니, “금메 일어날 수만 있으문 을마나 좋것어? 그란디 일어날 수가 있어야제! 내가 혈압에 떨어져 다리하고 한쪽 팔까지 마비 된지 올해가 벌써 12년째 되었는디 좋아질 기미가 없응께 자식들도 그렇고 영감이 제일 미안해 죽것어!”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할머니께서 일부러 그러신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어떤 때가 제일 힘드세요?” “힘들 때? 힘든 것은 사람 없을 때 대소변이 마려우면 그것을 참고 있을 때가 젤로 힘들어!


누가 옆에서 거들어 줘야 된디 나 혼자서는 못한께! 첨에는 이것저것 묵고 이불에 싸불기도 했는디 인자는 음식도 적당히 묵고 했드니 사람 없을 때는 대소변도 안 마렵드만!”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제가 제일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요?” “뭣이 궁금한디?” “할머니께서는 방에 누워있는 환자답지 않게 늘 깨끗하게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데 누가 할머니 병 수발은 들어주고 있나요?” “우리 영감이 다 하제 누가 할 것이여? 아침이면 밥해서 둘이 묵고 설거지하고


물 데워서 나 씻겨주고 빨래 세탁기에 넣고 돌려서 널어놓고 나문 한나절이 가데 그라고 나서 점심 묵고 나문 영감은 바람 좀 쐬고 올란다고 차타고 노인당에 가서 저녁때까지 놀다 와서 저녁밥 묵으문 하루가 가제~에!” “그런데 그걸 12년 동안이나 하셨단 말씀이세요?” “그랑께 내가 영감한테 미안해서 얼른 죽었으문 좋것다고 그라제~에!” “할머니는 좋으시겠어요!” “좋기는 뭣이 좋아?” “젊은 사람들이 본 받아야 할 만큼 영감님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시니 얼마나 좋아요!”

 

"멍멍아! 위험한데 왜 거기 서 있니?"   "바깥 세상 구경 좀 하고 있어요!"

 "떨어지면 큰 일 난다! 빨리 내려와!"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서 잠도 자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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