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맛있는 술
이른 아침 집 뒤쪽 대(竹)숲에서 마치 혀를 굴려 불어대는 것처럼“호르~록 오께옥!”하고 들려오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차가운 겨울동안 어디서 지내고 왔는지 매년 이른 봄(春) 어김없이 찾아와‘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으니 빨리 일어나라!’는 듯 동이 틀 무렵이면 맑고 고운 노래를 불러주는 휘파람새의 소리에“상쾌한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오늘은 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기대감을 안고 우체국에 출근하여 우편물을 정리하여 시골마을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천동마을에 들어서며 시계를 보았더니 시간은 벌써 오후 3시가 넘어서고 있었는데 라면박스 보다 2배쯤 더 크고 제법 무거운 택배 한 개를 배달하려고 골목 끝에 있는 김영임 할머니 댁 마당에 들어서면서“할머니! 저 왔어요! 어디계세요?”하였더니 방문이“덜컹!”열리면서“택배 갖고 왔어?”하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내미셨다. “오늘은 택배 기다리시느라 밭에도 못나가셨나 보네요?” “밭에? 금방 갖다왔어! 그라고 이랄 때 한번씩 쉬기도 하고 그라제
날마다 일만 하문 쓰간디!”하며 얼른 신발을 신고 나와“이리 줘!”하며 택배를 받으려고 하셨다. “택배가 상당히 무겁거든요. 그러니까 방문을 열어놓으세요! 제가 방안에 넣어드릴게요.” “그것이 그라고 무구와? 우리 아들이 또 뭣을 해서 보냈으까? 그만 좀 보내라고 그랑께!” “무엇 보낸다고 연락 왔던가요?” “내가 촌(村)에서 혼자 살고 있응께 반찬 쪼금하고 심심하문 묵으라고 과자(菓子)좀 사서 보냈다고 엊저녁에 전화가 왔는디 빨리도 와 부렇네! 참말로 세상은 존 세상이여!
어지께 서울서 보낸 것이 오늘 여그까지 와분께!” “요즘 택배는 빨리 오거든요. 그런데 아드님이 효자신가 봐요?” “우리 아들은 자꼬 촌에 혼자 있지 말고 합치자고 해싼디 내가 서울가문 살수가 없응께 도로 내려와 부러! 그랑께 어머니 반찬이라도 해서 보낸다고 이라고 뭣을 보내싼당께!” “도시에서 시골 부모님에게 이렇게 반찬 마련해서 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정말 좋은 일이네요. 아드님을 잘 두셔서 좋으시겠어요. 그럼 저는 바쁘니까 이만 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택배를 방안에 넣어두고 막 오토바이에 올라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아제! 그란디 그냥 가 불라고?”하며 서운한 표정을 하고 계신다. “가려면 그냥 가야지 큰소리를 지르며 가겠어요?” “아니~이! 내말은 그것이 아니고 입맛도 안 다시고 그냥 가불라냐고?” “아직 배달해야 할 우편물이 많이 남았거든요. 그러니까 빨리 가서 편지 배달해야지요.” “으째 아제는 올 때마다 그라고 바쁜가 몰르것네! 그라지 말고 술 한 잔만 하고 가! 어서 이리 와 보랑께!”
“성의는 고마운데요.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술 마시면 안 되거든요.” “우리 동네 김 영감은 오토바이 타고 댕겨도 술만 잘 묵든디 그래!” “그 영감님은 술을 드셔도 집에 가서 주무시면 되지만 저는 우편물을 배달해야 되는데 술 마시고 얼굴이 빨개져서 술 냄새 풍기고 다니면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또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저 사람 편지 배달하면서 술 마시고 오토바이 타다 사고 났다!’고 하면 안 되니까요.” “그래도 한잔만 하문 안 되까?
우리 아들이 나 심심하문 묵으라고 사다 준 최고 맛있는 술이 있는디!” “아무리 맛있는 술이 있어도 근무 중에 술을 마시면 안 되거든요. 죄송합니다!” “그라문 아제는 술 절대 안 마신가?” “저라고 술을 왜? 안 마시겠어요? 근무 끝나면 한잔씩 할 때도 있지요!” “그라문 여가 쬐깐 지달리고 있어 잉!”하시더니 얼른 곳간에 다녀와“아무리 술을 묵으라고 해도 안 묵은께 이것이라도 집에 갖고 가서 자셔! 그래야 내가 덜 서운하제!”하며 기어이 오토바이 적재함에 넣어주신 것은 작은 뽕(오디) 주(酒) 한 병이었다.
할머니께서 저에게 선물하신 뽕(오디)주(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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