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아짐이 나를 고상 시키네!"

큰가방 2011. 3. 5. 17:17

 

아짐이 나를 고상시키네!”

 

우수(雨水)가 지나면서 하늘의 밝고 맑은 햇살은 온 누리를 따사롭게 비추고 바다건너 불어오는 봄바람은 겨우내 얼어붙어있던 대지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아직도 깊은 겨울잠에 빠져있는 개구리를 깨우려는 듯 살랑거리고 시골 들녘의 넓은 밭에서는 많은 농부와 아낙네들이 금년 6월부터 수확할 감자 씨를 심고 비닐을 덮는 작업이 한창인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산비둘기 한 쌍이 이미 수확이 모두 끝나 밭갈이를 기다리는 쪽파 밭에 내려앉아 모이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러 시골마을로 달려가는 길.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화죽리 화당마을 첫 집에서 조그만 택배 하나를 배달하려고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놓고 대문을 밀었는데 굳게 잠겨있었다. “이상하다! 왜 대문이 잠겨있지? 오전에 할머니께 전화했을 때는 집에서 기다리신다고 하셨는데!”하며 택배 기표지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할머니! 우체국 집배원인데요. 지금 대문 앞에 와 있는데 문이 잠겨있네요. 어디계세요?” “~? 지금 집으로 가고 있어!”

 

어디서 집으로 오시는 중인데요?” “여그? 지금 동네 앞이여! 그란디 거시기가 고장 나갔고 우리 시아제랑 같이 간께 쬐까만 지달려! 얼렁 가께!” “무엇이 고장 났는데요?” “내가 타고 댕긴 것 안있어? 그것이 고장 나부렇단께!” “타고 다니는 것이라고요? 그게 무엇인데요?” “~~! 내가 타고 댕긴 거시기 안 있어 그것 말이여!”하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어이! 자네 얼렁 이리 잔 와봐!”하는 소리가 들려 뒤 돌아보았더니 마을 영감님 부부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전동휠체어를 밀고 오는 중이었다.

 

아니 어르신 왜 휠체어를 밀고 오세요? 무엇이 고장 났나요?” “아이고! 우리 아짐(형수)이 나를 고상시키네! 자네 그라고 보고만 있지 말고 얼렁 잔 와서 같이 좀 밀어주랑께!”호통이시다. “! 알았습니다. 이제 손 놓으세요! 제가 밀고 갈게요.”하며 한 손으로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대문 앞으로 다가서자 그것 참! 이상한 일이네! 금방까지 우리 둘이 밀어도 잘 안가드만 으째 자네는 한 손으로 밀어도 잘 간단가?” “지금 오신 길은 얕은 오르막이고

 

여기는 내리막이니 한 손으로 밀어도 잘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란가? 어쩐지 잘 궁굴어가드라 그랬제!” “그런데 왜 휠체어를 밀고 오세요? 어디가 고장 났나요?” “내가 알것는가? 우리 아짐이 잘 타고 댕기드만 갑자기 꼼짝도 안 한다고 얼렁잔 오라고 해싸서 집이서 일하다가 급하게 나와 봤드만 이라고 생겼드란 마시!”하시자 금방이라도 머리가 땅에 닿을 듯 허리를 구부리고 종종 걸음으로 따라오신 할머니 그것이 빠때린가 뭣인가 약이 따 떨어져 부렇는가 으쨌는가 갑자기 안 가불드란께!”하신다.

 

전동 휠체어는 배터리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니까 항상 충전을 충분히 시켜야하는데 오늘은 충전이 덜 되었나 보네요!” “그런데 어디에서 휠체어가 멈추었는데요?” “으디는 으디것는가? 동네 앞에서 그랬제! 노인 양반이 이것 타고 무수와서 으디 멀리나 나가것는가? 그란디 저것이 으째 저라고 무겁단가?” “전동휠체어는 충전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니까 차체의 무게는 얼마 되지 않은데 비해 장정 한 사람들이 힘들게 들어 올릴 만큼 무거운 배터리가 내장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요.”하자 옆에 계신 할머니. “아이고! 무단히 우리 시아제 고상을 시켜서 미안한디 으짜사 쓰까? 뭣을 잔 대접해야 쓰꺼인디 줄 것도 읍고!” “그래도 오늘은 동네 앞에서 고장 나서 다행이네! 먼자 같이 밭에서 고장 나부렇으문 으짤뻔 했어?” “그러면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으째 읍었단가? ~그 우게 밭에서 고장이 나부러 갖고 또 밀고 오니라고 고생을 을마나 했다고! ~~!”하시는 영감님의 입가에 무언가 해 냈다는 자부심에 어느새 함박웃음이 가득하였다.

   

"요것이 으째 이라고 무겁단가? 징허게 안 가네!"

"아이고! 인자 다 왔네! 그란디 사진은 뭣할라고 찍어 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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