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으로 들어간 약(藥)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달려가는 길. 5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시골길 옆 가로수는 매일 계속되는 초여름 같은 날씨 때문에 푸른 잎이 무성하게 자라나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데 마을을 이어주는 기다란 농로 길 옆 밭에서는 지난 1월 유난히도 춥고 강한 바람이 불어대던 차가운 날씨 속에서 파종하였던 감자들이 추위를 이기고 싹이 나오더니 어느새 어린이 주먹만큼 큰 씨알이 영글어 여기저기 수확이 한창이다. “어르신! 금년 감자 가격은 어떻던가요?”
“아직은 잘 몰라! 도시 공판장으로 갖고 가봐야 시세를 알제! 그라고 지금은 간식용 감자가 아니고 조리용이라 아직은 맛이 덜 들었어! 인자 6월 초쯤 되야 제대로 맛있는 감자가 나오꺼이시!” “그래요! 금년에는 감자가격이 조금이라도 올랐으면 좋겠네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입니다.” “여기 사무실인데요. 엊그제 율포리 장목마을 우편물 배달 담당이 누구신가요?” “내가 담당인데 왜 그러시나요?”
“장목마을 김성국씨께서 문의할 것이 있다고 우체국에 오셨거든요. 바꿔드릴게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더니 “여보세요! 나여! 그란디 뭣 잔 물어봐야 쓰것네! 다름이 아니고 엊그제께 혹시 우리 집에 약(藥) 안 왔던가? 우리 어머니 약이 올 때가 지났는디 아직 소식이 읍단 말이시 아까 내가 병원에 전화 해 봤는디 분명히 보냈다고 그란단 마시!” “엊그제가 아니고 지난주 금요일 날 제가 조그만 택배 하나를 배달한 적은 있는데 그것이 약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랬어? 그라문 크기가 을마나 되든가?” “넓이는 대 봉투 정도에 두께는 와이샤쓰 상자 절반쯤 되는 택배인데 노(老) 할머니께 드리면서 ‘할머니! 이것 아주 중요한 것이니까 아드님 오시면 꼭 전해주세요!’ 했더니 웃으면서 ‘우리 아들 껏이라고? 알았어! 꺽정도 말어!’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모르시던가요?” “그랬어? 아이고! 인자 큰일 났네!” “예~에! 큰일이라고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우리 어머니가 작년까지는 정신이 총총하셨는디 올해 들어 뭣을 자꼬 잘 숨기드란 말이시!
그래갖고 으따 둔지를 몰라! 으째야 쓰까?” “그랬어요? 저는 평소에 사람을 보면 늘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반가워하셔서 90세가 넘은 할머니께서 아픈 곳도 없이 굉장히 정정하시다 했는데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갈수록 기억력이 없어져서 금방했든 일도 잊어 불고 그런단 마시! 지난번에 병원에 모시고 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드니 ‘인자 나이가 많으시니 치매 증상이 있는 것 같다!’ 고 그러드라고!” “그랬어요? 그런 줄 알았으면 할머니께 택배를 드리는 게 아닌데 그렇게 되었네요.
그럼 어떻게 하지요?” “그란디 우리 어머니가 뭣을 숨키문 아주 깊이도 숨켜 놔분단마시. 그랑께 한번 찾어낼라문 죽을 지경인디 으째야 쓰까?” “그러면 제가 이따 우편물 배달 끝나면 할머니를 만나볼까요?” “헛~헛~허! 이 사람아 자네가 물어본다고 으따 깊이 숨겨논 택배를 기억이나 하것는가? 천상 내가 다시 한 번 찾아보든지 해야제!” “죄송해서 어떻게 하지요? 제가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니까 이해하세요!” “아이고! 이해하고 뭣하고 할 것이나 있는가? 자네는 우리 사정을 잘 모른께 그랄 수 뿐이 읍제!
안 그런가? 그나저나 바쁜 사람한테 전화해서 내가 미안하시!”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택배 배달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무튼 다시 한 번 찾아보시고 저에게 전화 한번 주시겠어요?” “알았네! 그라문 수고하소 잉!” 하고 전화는 끊겼다. 그리고 약 1시간쯤 지난 뒤 휴대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나여! 약 찾었네! 우리 어머니가 장롱 깊은데다 넣어놨드란 말이시! 나는 못 찾을지 알았는디 다행이 찾었구만! 고맙네 잉!”
"어르신! 어디 다녀오세요?" "요새 쑥이 사람한테 좋다고 쪼깐 비어다 노라고 안 해싼가!"
6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복분자의 열매는 검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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