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 말이 맞구만!”
6월 하순이 가까워지면서 하늘의 붉은 태양은 강열한 햇볕을 쏟아 붓는 듯 매일 섭씨 28~9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면서 길가의 가로수들은 어느새 잎이 무성한 여름옷을 갈아입고 오가는 길손에게 밝은 미소를 보내고 있으며 이미 보리를 베어낸 논에는 모를 심는 이양기의 힘찬 엔진소리가 온 들녘에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지는데 마을을 이어주는 시골길 옆 밭에서는 오늘도 여기저기 많은 아낙네들이 봄 감자를 캐내어 박스에 담느라 구슬땀을 흘리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는 길.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객산리 청포마을로 접어들자 시간은 어느새 오후 3시가 넘어서고 있었는데 마을 맨 윗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께서는 그늘 진 토방에 앉아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내고 계신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을 하셨기에 얼굴이 그렇게 빨개지셨어요?”하고 묻자 “아이고! 날도 징허게도 덮네! 요새 날이 뜨겁고 그랑께 요 앞 울타리에 풀들이 말도 못허게 질어싸서
그것 좀 짤라 내불라고 낫질을 잔 했는디 인자는 힘이 부쳐서 못하것네! 그란디 오늘은 뭣을 갖고 왔어?” “면사무소에서 아드님 자동차세를 보냈네요!”하였더니 깜짝 놀란 얼굴로 “으찬다고? 우리 아들 자동차가 또 뭐시 잘못되얐다고?”하신다. “아니요! 자동차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아드님이 가지고 있는 차에 세금이 나왔어요.” “오~오! 우리 아들 차에 세금이 나왔다고?” “그런데 차가 두 대인가요?” “한나는 자가용이고 또 한나는 짐 같은 것 실코 댕기는 큰 차가 있는디 세금이 마니 나왔으까?”
“그러면 승용차 한 대에 화물차 한 대가 있는 말씀이지요?” “잉! 그란디 세금이 을마나 마니 나왔으까?” “아니요!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았으니까 고지서는 잘 놔두셨다가 아드님 오시면 전해주세요!” “그래도 을만지는 알아야 이따 아들한테 전화 오문 갈쳐주제! 안 그래? 그란디 으째 이른 것은 잊어 불도 안하고 때가 되문 이라고 잘 나온가 몰르것네!” “잊어버릴게 따로 있지 세금고지서가 제때에 나오지 않고 늦게 나오거나 빠뜨렸다가 나중에 이것저것 한꺼번에 나오면 힘이 더 들잖아요!”
“그라까? 나는 세금이 한번 안 나오문 여영 안 나올지 알았는디 그것이 아닌갑네 잉!” “그러게요. 가끔씩 한번 빠뜨리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면 담당 공무원의 책임이 따르니까 그렇게 할 수가 없거든요.” “아제 말을 들어 본께 참말로 그라네! 뭐시든지 항상 제때에 내부러야제 놔 두문 그것이 빚이 된께 안 되야! 내 말이 맞제?”하더니 천천히 일어나 또다시 낫을 들고 울타리 앞으로 다가서신다. “할머니! 뭐하시려고 그러세요?” “쪼깐 쉬었응께 이것 잔 마져 짤라부러야제!”
“지금 날씨가 이렇게 무더운데 또 낫질하시게요?” “그라문 으차껏이여? 누가 해 줄 사람도 읍고 그랑께 내가 해야제!” “그러면 지금 그것 자르지 않으면 누가 벌금 물린다고 하던가요?” “아니~이! 누가 벌금을 물리꺼시여? 그냥 내가 보기에 답답한께 자를라고 그라제!” “그러면 지금 자르지 않으면 혹시 누가 할머니 잡아간다고 하던가요?” “아니! 늙은이 잡어가서 으따 쓸라고 잡어가? 안 잡어가!” “그러면 내일은 어디 일하러 나가시나요?”
“옛날에는 나도 일도 하로 댕기고 그랬는디 인자는 힘이 들어서 못 댕겨! 그라고 요새는 누가 일 해주라고 부르는 사람도 읍드만!” “그러면 내일 아침 일찍 시원할 때 하시면 안되겠어요? 그러면 지금 보다는 훨씬 힘이 덜 드실 것 같은데요!”“아제는 부모님이 계신가?” “아니요! 지금은 두 분다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아니~이! 말 하는 것이 영 노인들 생각을 마니 하는 것 같어서 물어봐! 그란디 아제 말이 맞구만 저것은 낼 아침에 짤라야 쓰것구만!”
여름이 시작되면서 여기저기 예쁜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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