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쓴 전화번호
우리민족의 큰 명절 설이 며칠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오늘도 평소 배달 물량의 몇 배가 많은 택배가 도착되어 주인의 손으로 배달되기를 기다리고 있어 바쁘게 우편물을 정리하여 우체국 문을 나서려는 순간 휴대폰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류상진입니다.” “수고하십니다. 혹시 회천면 벽교리 담당 집배원이신가요?” 하며 40대 중반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그렇습니다. 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다름이 아니고 오늘 배달할 택배 중 신리마을 정일순 할머니께 배달될 택배 혹시 도착했던가요?”
“신리마을 정일순 할머니라면 이제는 돌아가신 이선진씨 댁으로 배달될 사과박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택배를 발송하면서
할머니 휴대전화 번호를 기표지에 잘못 적은 것 같거든요. 그러니 다시 적어주시겠습니까?”
“정일순 할머니 댁이라면 저도 잘 알고 있는데 굳이 휴대폰 번호를 다시적어야 하겠습니까? 혹시 집을 잘 모른다면 번호가 필요하겠지만 알고 있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십니까? 그런데 오늘은 할머니께서 광주로 출타를 하신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집의 대문을 잠그고 나가신다고 하니까 혹시 방문하더라도 문이 모두 잠겨있으면 배달하기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는 하겠네요. 그런데 요즘은 잘 아시다시피 택배가 폭주하는 기간이어서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 할머니 댁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그 때면 돌아오지 않으실까요?”
“제가 듣기에는 오늘은 광주에서 주무시고 내일쯤 내려가신다고 하니까 집에 방문하기 전에 미리 전화를 하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십시오.”하고 전화는 끊겼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정신없이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 넘어서고 있었는데
신리마을 정일순 할머니 댁 앞에서 문자로 도착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여보씨요! 누구여?” “할머니 우체국입니다.”
“오~오! 우체구 아제구만 그란디 으찬다고 전화 해쓰까?” “택배가 도착했는데 지금 광주에 계신다면서요.” “이~잉! 나 지금 광주 와 부렇서!”
“그러면 택배는 누구 댁에 맡겨 놓을까요?” “으따가 매끼지 말고 기양 우리 집 비니루 하우스 있제? 거그다가 놨둬부러!”
“비닐하우스에 놔두라고요? 어느 쪽 하우스가 할머니 하우스인데요?” “와따~아! 거그 우리 집 대문 옆에 쪼깐 올라가문 째깐한 하우스 안 있어?
문 열어지지 마라고 독으로 괴야논 것 말이여 그거시 우리 꺼시여! 그랑께 거그다가 놨뚜랑께!” “잠깐만요. 그러니까 대문 위쪽에 있는 조그만 하우스 말씀이지요?”
“잉! 그거시 우리 꺼시랑께 그랑께 문을 잔 열어봐 그라문 내가 삘간 꼬치를 널어 놨응께 으디 봐! 봐! 그거시 널려갖고 있는가?”
“예! 빨간 고추가 널려있네요.” “그라문 문짝 옆에다가 놨뚜지 말고 안짝에다 갖다 놨둬!” “예! 안쪽에 두었어요.”
“거그 옆에 보문 거시기 그물 같이 생긴 껌정 것 있제? 그것으로 안 뵈이게 잔 덮어 놔부러! 알았제?” “예! 택배 박스가 잘 안 보이도록 덮어 놨어요.”
“잉! 잘했어! 그라문 나 낼 내르가도 되것제?” “예 이제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계셨다 오세요.” 하며 전화는 끊겼는데 무언가 홀가분한 이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
"빨간 고추가 널려있는 하우스 안 쪽에 잘 안 보이도록 놔두었으니 편하게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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