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수박
전남 보성 회천면 마산마을로 들어서자 정자에서“우체국 아제! 이루와 째깐 쉬었다 가~아!”하고 마을 할머니들께서 부르신다.
“오늘은 무슨 맛있는 거라도 있나요?”하며 잠시 빨간 오토바이를 그늘에 세워두고 정자에 가까이 다가서자
“여가 바람이 징하게 씨연항께 이루와 째깐 앙거서 땀 잔 식히고 가. 어서!”하시더니 삶은 옥수수를 내놓으며
“이것이 이라고 생겼어도 맛있는 찰옥수순디 존 것은 다 돈하고 바까불고 못 생긴 것만 쪄 논께 이라고 생겼네! 그래도 쫀득쫀득하니 묵을 만 하꺼시여!
한 개 자셔봐!”하며 먹을 것을 권하신다. “못생긴 옥수수라고 해도 제가 보기에는 맛있게 보이는데요.”하며 그중 한 개를 집어
옥수수 알갱이 몇 개를 이빨로 뜯어 오물거리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아제 바쁜가?”하고 물으셨다. “그건 왜 물으세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이! 우리가 금방 냉장고에 수박을 넣는디 씨연해 질라문 쪼깐 지달려야 되꺼시여 그랑께 여그 바람 시연한디서 더 쉬였다가 잡수고 가 잉!”
“그런데 수박은 어디서 사오셨어요?” “오늘이 보성읍에 5일 장날이여!” “그럼 장에서 사오셨어요?”
“그래서 장에를 갔드니 별로 멋도 살 것은 읍고 여그저그 수박만 징하게 마니 나왔드랑께!” “수박이 많이 나왔으면 가격은 굉장히 싸졌겠는데요.
그래서 사오셨어요?” “그랑께 들어봐! 그래서 그랑가 으짠가 갑자기 수박이 묵고 싶어 지드랑께!” “그럼 한 덩이 사오시면 되잖아요.”
“그란디 한 덩어리 아니라 두 덩어리라도 사올라문 사갖고 오것는디 그것을 갖고 보성서 여그까지 우추고 오꺼시여!”
“할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 여기까지 운반할 일이 큰일이네요!” “그랑께 말이여! 장에서 수박 사 갖고 비싼 택시로 와 불문 간딴하제만
안 그라문 그것을 짊어지고 뻐스 탄디로 갖고 가서 또 버스 타고 이리 와 갖고 또 쩌그 길가 정류장에서 내리문 동네까지 한참을 걸어와야 쓰꺼인디
우추고 그것을 갖고 댕기꺼시여! 그래서 포기해 부렇제!” “그럼 수박을 안 사오셨단 말씀이세요?”하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더니
“그래도 아제 줄 수박은 있응께 꺽정도 말어! 알었어?” “그럼 수박은 어떻게 구하셨는데요?” “오늘이 대서(大暑)고 그랑께 질로 더운 날인디 기양 넘어가문 쓰것서?
그란디 마치 맞게 우리 며느리가 수박을 한덩어리 사 갖고 왔드랑께!” “그랬어요? 그런데 어떻게 시어머니가 수박 드시고 싶은 줄 알고 그걸 사 왔을까요?
며느리가 정말 예쁘시겠네요?”하였더니 옆 할머니께서 “안 그래도 그 집 며느리는 시엄씨 잡술 것을 사 갖고 잘 둘러보러 댕겨!”하시자
“그래서 여그 회관 냉장고에 넣는디 아까는 또 수박 장시 차가 왔드랑께!” “그래서 또 수박을 사셨어요?”
“그래서 또 한 덩어리 더 사갖고 냉장고에 넣당께! 그랑께 수박이 전부 두덩어리나 되야!” “그러면 그걸 전부 누가 다 드실 건데요?”
“누가 묵기는 누가 다 묵어! 천상 동네 사람들 전부 나나묵어야제! 혼자 있으문 수박이 묵고 싶어도 한통 쪼개 노문 그것을 다 못 묵응께
얼렁 못 사고 그란디 동네 사람이 여럿인디 그것 두통 못 묵으꺼시여? 그라고 오늘 못 묵으문 낼 묵어도 되고 그란디!”하시더니
“여가 째까만 있어 잉! 내가 얼렁 가서 수박 갖고 오꺼잉께! 인자 씨연해 졌으꺼시여!”하며 회관으로 달려가셨다.
"오늘은 사이좋게 어디가세요?" "쩌그 웃동네 놀러 잔 가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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