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괴물 소동
전남 보성읍 주음마을을 지나면서 바라본 방죽에는 오늘도 많은 연잎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며 지나가는 길손을 반겨주었다.
나는 연잎을 바라보다 문득 30여전 일어난 황소괴물 소동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보았다.
원래 주음방죽은 나와 같은 5~60대의 사람들에게는 연(蓮)방죽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그곳에 가면 언제나 물위에 두둥실 떠있는 연잎과
또 여름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는 분홍색 연꽃을 만날 수 있어 연 방죽으로 불렸던 것인데,
그곳에서 웃지 못 할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30여 년 전 일이다. 어느 날부터 “주음방죽에서 밤이면 귀신이 나타나
황소 울음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더라!”하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다시“주음방죽에는 황소괴물이 살고 있다더라!”
소문으로 바뀌더니 “주음방죽에는 괴물이 살면서 밤이면 커다란 울음소리를 낸다더라!” 소문으로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 말이 사실인지 진위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밤이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마치 그 말이 사실이나 되는 것처럼 소문이 돌더니
이번에는 “모 문중에서 방죽 옆으로 선조의 묘를 이장을 한 다음부터 괴물이 나타났다고 하더라!” “방죽 옆에 고목나무가 있는데,
옆면이 밤에 보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어 나무 때문에 그런다고 하더라!”하며 날이 가면 갈수록 이상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나도 어느 날,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하기 위하여 밤에 친구들과 함께 가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대기(?)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음메~에!”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가 듣기에 황소 울음소리는 아닌 것 같았는데, 그렇다고 전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이상한 소리였다.
그런데 그 순간 용감한(?) 젊은이 두 사람이 “황소괴물을 잡아내고 말겠다!”며 방죽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이쪽으로 헤엄을 쳐가면, 저쪽에서 “음메~에!” 저쪽으로 헤엄을 쳐가면, 이쪽에서 “음메~에!” 마치 사람을 놀리는 것처럼
여기저기서“음메~에!”하는 소리가 들리니 처음에 기세 좋게 호언장담하던 두 청년은 결국은 제풀에 지쳐서 물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로도 황소괴물 소문은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퍼지다가 어느 날 TV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면서 이상한 울음소리
전문가인 학자가 함께 동행을 하여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로 밝혀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흑백 TV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때여서
볼거리가 귀했던 시절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 이상한 소문을 믿은 것은 아닌지, 또 황소개구리에 대한 정보는 전혀 듣지 못했는데
어떤 경로로 찾아왔는지 몰라도 어느 날 갑자기 한 밤중에 방죽에서 “음메~에!” 소리가 들리니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기겁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공교롭게 방죽 근처에 모 문중에서 선조의 묘를 이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니
‘묘를 잘 못써서 그런다!’는 소리도 했을 법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옆으로 보면 사람 얼굴 형상을 하고 있다!’는
고목나무는 썩어서 사라지고 방죽의 물도 많이 빠져, 오늘도 빼빼 마른 연 잎들만 옛날의 황소괴물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을 뿐이다.
겨울에는 왜 그런지 해도 빨리 넘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