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후배의 바램

큰가방 2018. 2. 24. 14:10

후배의 바램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자 간밤에 내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호남지방은 밤부터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눈이 내리는 곳이 있겠으니

외출하실 때 두툼한 옷 챙겨 입는 것 잊지 마시고 비닐하우스는 많은 눈과 강풍 때문에 피해 입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적중한 것 같았다. 길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후배(後輩) 한 사람이

활짝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자네 정말 오랜만일세! 그 동안 잘 계셨는가?” “염려해준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형님 건강은 어떠세요? 누구 말을 들으니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하셨다 던데!” “몸에 암()이 있다고 해서

수술을 받고 이제는 거의 좋아지는 단계야.” “좋아지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자네는 정년퇴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즘 무엇하고 지내는가?” “저의 집 근처에 빈 땅이 조금 있어 거기다 염소를 키우고 있어요.” “염소 키우고 있다고?

그걸 키운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닌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한 번 시작한 일인데.” “지금 몇 마리나 키우는데?”

 

이제 시작하는 단계니 한 20마리쯤 될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키울 생각을 했는가?” “저의 친구 두 사람이 시골 외진 곳에서

목장(牧場)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해 봤는데퇴직하고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시작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판로(販路)는 정해져 있는가?” “그게 조금 애매하더라고요. 고기를 일정하게 꾸준히 공급하는 그런 체계가 갖춰져야 하는데

아직도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의존하는 시스템이라 가격이 굉장히 들쑥날쑥하더라고요.” “그럼 가격이 갑자기 폭락하는 일은 없고?”

 

요즘은 가격이 조금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여러 마리를 키우는데 병()은 없던가?” “그게 없을 수는 없겠지만 아직까지

특별하게는 없으니 괜찮을 것 같아요.” “옛날에 내가 직장에 있었을 때 나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 한 사람이 처음에 10마리 정도

 

키우기 시작하더라고, 그런데 자꾸 새끼를 낳기 시작하더니 금방 20마리 30마리로 불어나는 거야!” “염소는 그게 장점이라 하더라고요.”

그리고 50마리가 넘어가고 60마리가 되니까 그 사람 하는 말이인자 쬐끄만 더 있으문 백 마리가 되꺼이시!

 

그라문 나 여그 안 댕기고 집이서 그것이나 키움시로 편하게 살라네!’하며 매일 자랑을 하더라고” “무슨 자랑을 했는데요?”

“‘오늘은 몇 마리 되얏고! 낼은 또 몇 마리가 새끼 나꺼인께 몇 마리가 되꺼이고!’하는 식으로 마릿수 불어나는 자랑이지 뭐가 있겠는가?”

 

그러면 백 마리까지 채워 직장 그만 두었답니까?” “그런데 70마리가 넘어가면서 문제가 생긴 거야.” “무슨 문제가 생겼는데요.”

새끼들이 태어나면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어야 하는데 자꾸 기형아(畸形兒)가 나오고, 죽어 나오기도 하고,

 

또 어미들은 병으로 죽기도 하고. 내 생각으로는 종자 갱신을 해야 하는데 숫염소를 한 번도 바꾸지 않고 계속 놔두니까

가족끼리 새끼를 만들다보니 생긴 병이 아닌가 싶더라고.” “그럼 어떻게 됐답니까?” “그러니까 종자도 갱신하고

 

병이 있으면 빨리 치료하고 했더라면 계획대로 무난했을 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몇 개월 되지 않아 망했어!”

그것 참 허무했겠네요.” “그러면 자네는 무슨 계획이 있는가?” “그것 몇 마리 키우는데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겠어요?

 

그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고, 가격도 자꾸 올랐다 내렸다 할 것이 아니고 일정 수준 꾸준하였으면 좋겠어요.” 


전남 보성읍 우산리 들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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