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예초기
시골집 울타리를 타고 길게 뻗어있는 호박 줄기에 노란 호박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 오가는 길손에게 수줍은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
‘머지않아 찬 서리가 내릴 텐데 이제 서야 꽃이 피면 나중에 열매는 어떻게 맺으려고 그러냐?’묻다 자세히 살펴보니
덩굴 한쪽 끝에 언제부터 자랐는지 노랗게 잘 익은, 둥근 보름달처럼 커다란 호박 한 덩이가 매달려 있었다.
전남 보성읍 관주산 정상에 오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아 혼자 운동기구(運動器具)를 이용하여 ‘하나! 둘! 셋! 넷!’구령에 맞춰
운동(運動)을 하고 있는데 “동생! 오늘은 일찍 오셨네!”하며 선배(先輩) 두 분이 올라왔다. “제가 빠른 게 아니고
형님들이 늦으셨지요. 두 분이 같이 늦은 것을 보니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이나 있겠는가? 오늘이 수요일이니
KBS 도전 꿈의 무대 방송(放送)하는 날 아닌가? 그래서 그것 잔 보고 올라온께 시간이 이라고 되었네!” “그러면 오늘 우승(優勝)한
가수는 몇 승을 했다던가요?” “4승째라 그러든디 그러니까 다음 주에 한 번 더 우승하문 인자 진짜 가수가 되는 것이제!”
“그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나라에 실력이 있어도 빛을 못 보는 가수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그렇게라도 해서
가수가 되면 정말 좋은데 문제는 히트곡이 있냐? 없냐가 문제여!” “그러니까요. 가수는 히트곡이 생명인데
노래 한 곡이 나와 히트를 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해야 합니까?”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디선가‘웨~웨~웽!’
풀 베는 기계소리가 상당히 시끄럽게 들려왔다. “형님 조상님 산소에 벌초(伐草)는 하셨어요?” “엊그제 우리 형제간들하고 사촌까지
전부다 모여서 했는디 참말로 힘들드만!” “산소가 전부 몇 봉인데요?” “우리 조부모님, 백부님 내외, 그리고 부모님과 숙부님
내외까지 여덟 봉에다 우리가 사용할 것까지 해야 하니 상당히 넓어!” “풀 베는 일이 장난이 아니지요?”
“그래서 올해는 잔디 깎는 기계를 하나 구입해서 사용했는데 잔디라는 게 어디 쉽게 잘리던가? 그리고 해마다 예초기를 잘 사용하는
일꾼 조카가 하필이면 이때 직장(職場)에 교육이 있다며 천안으로 출장(出張) 가는 바람에 그걸 짊어지고 풀을 자르는데 정말 힘들데!”
“수고하셨네요.” “그러니까 벌초도 일 년에 한 번만 할 것이 아니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해주면 좋은데 그게 잘 안되니 문제일세!”
“그러면 형님은 벌초를 어떻게 하셨어요?”하고 옆에 있는 선배에게 물었더니“금년에도 내가 하기는 했는데 내년에는 어떻게 할까?
걱정일세!” “왜요? 지금까지 형님께서 잘해 오셨으면서 그러세요?” “그런데 벌초를 한 번하고 나면 어깨와 다리가 후들거리고,
사방 데가 안 아픈 곳이 없어서 몸살 날 지경이야 그리고 해마다 사용하는 예초기가 너무 무겁고 낡아 자꾸 고장이 나는데 우연히
홈쇼핑 TV를 보니 아주 쉽게 풀이 잘 잘리는 기계가 있더라고, 그래서 그걸 하나 구입해서 사용하는데 문제는 충전하는데
무려 7시간이 걸리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30분밖에 안 되더라고!” “그럼 풀은 잘 잘리던가요?” “풀만 잘 잘리면 그래도
한 30분은 기계가 돌아가니까 문제가 없겠는데, 잘 안 잘리니 그게 문제야! 그래서 몇 번 써보다 포기하고 다시 예전에 사용하던
예초기를 고쳐 겨우 벌초는 끝냈는데 내년이 문제거든.” “왜요?” “내가 농사를 짓는다거나 또 잔디밭이 있거나 해서
계속 사용하면 괜찮겠지만 일 년에 벌초할 때만 기계를 사용하니 내년에 벌초를 하려면 또 수리를 해야 하거든,
그래서 차라리 벌초해주는 사람에게 맡겨서 하면 어떨까? 생각중일세!”
가을은 억새의 계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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