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亭子)에서 만난 사람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立秋)가 지났어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염(暴炎)은 며칠째 변함없이 계속되었고,
이른 새벽부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가 몰려오고 있는데 어디선가“또~르~르~르”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요즘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풀벌레는 이미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생각하니 고맙기도 하고
신기한 마음이다. 우체국(郵遞局)에서 공과금(公課金)을 납부(納付)하고 천천히 집을 향하여 걸어오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열기는
견디기 힘들만큼 뜨거워 잠시 쉬어가려고 마을 입구의 정자(亭子)로 향하였는데 6십대 초반의 부부(夫婦)가“안녕하세요!”하여
“네~에! 안녕하세요?”하며 엉겁결에 같이 인사를 하였다. “혹시 이 마을에 사세요?” “예! 그런데요.”
“그러면 이 마을에 가게는 없나요?” “음료수 같은 걸 판매하는 가게 말씀이세요?” “네! 그런 가게가 옛날에는 세갠가
네갠가 있었는데 오늘 보니 하나도 없는 것 같아서요.”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저쪽에 에덴슈퍼와 이쪽에 조그만 구멍가게들이
세 개 있었는데 장사가 되지 않으니 문을 닫을 수밖에 더 있겠어요?” “왜 그렇게 장사가 안 될까요?”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니
무슨 장사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어디서 오셨어요?” “저희들은 광주(光州)에서 살고 있는데 옛날에 이 마을에서 살다가
약 20년 전에 애들 교육(敎育) 때문에 이사를 하였거든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건 없는데 한 가지 달라진 점은
가게들이 다 없어졌더라고요.” “20년 전이면 지금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요. 시내(市內)에서 세탁소를 하는
저의 친구 말을 빌리면 그때는 세탁물이 엄청나게 많아서 밤 2~3시까지 옷 다리는 일이 보통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지금 대낮보다 더 많이 북적거렸고‘이 사람아! 무슨 옷을 날 새기로 다리고 있어!
이제 그만하고 나랑 소주 한 잔하고 그만 쉬시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밤 8시만 되면
거리에 사람이 보이지 않아 가로등마저 꺼져버리면 마치 유령(幽靈)의 도시처럼 을씨년스럽다고 하더라고요.”
“한 20년 사이에 그렇게 변했다니 안타깝네요.” “그런데 옛날에 이 마을에서 사셨다면 살던 집은 가 보셨어요?”
“가보긴 했는데 집은 남아있는데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없더라고요.”하며 상당히 아쉬운 표정이다.
“그러면 누구를 만나러 오셨어요?” “특별히 누구를 만나려고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려
옛날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얼굴이라도 보고가면 좋겠다 싶어 왔는데 아무도 만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럼 서운하시겠네요.”
“서운해도 어쩌겠어요. 사람들이 바쁘기도 하지만 또 예고도 없이 찾아 온 것이 잘못된 것이겠지요. 그런데 엊그제 TV를 보니
전남 고흥군(高興郡)이 앞으로 30년 뒤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하던데 여기는 어떤가요?” “시골의 인구문제가 엊그제 일이랍니까?
여기는 그래도 읍(邑)지역이라 더 나은데 면 소재지 쪽 마을만 가더라도 젊은 사람 찾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60대가 젊은 사람이니
어린이들 뛰노는 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초등학교까지 폐교될 운명이니 걱정이지요.” “그래도 학교는 폐교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러네요.” “학교 폐교를 우리 마음대로 결정하는 게 아니고 학생 수가 결정을 하는 것이니 귀촌(歸村)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데 문제는 대부분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시골로 돌아오니 젊은 사람들이 어린애들하고 같이
귀농하면 우대를 해 준다든지 하는 그런 정책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가을은 억새의 계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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