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옛 이야기

큰가방 2002. 9. 9. 17:20
9월에 들어서자 날씨는 가을로 향하는 느낌입니다.
들녘의 푸르름이 이제는 서서히 누런 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풍겨오는 농약 냄새가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러나 일년 농사를
가늠하는 마지막 행사일거라는 생각을 하니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 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잘 계셨어요?"
하는 저의 인사에 농약을 뿌리고 계시던 일손을 잠시 놓고 저를 쳐다보시던 영감님께서
"엉 아니 자네 정말 오랜만 이시 그래 그 동안 잘 지냈어 응?" 하시며 저를 반기십니다.
"예! 잘 계셨어요? 집안도 무고하시고요? 아직도 건강하시네요?" 하는 저의 말에
"응 나야 잘있제 나는 자네가 통 안보이고 그래서 다른 데로 가분지 알았네 잘계시제?"
하시며 저를 반기십니다.
"지난번 태풍에 피해는 안보셨어요?" 하는 저의 말에
"나야 무슨 피해 보것는가? 피해랄 것도 없제만은 그래도 어쩌것인가? 그런 대로 괜찬하네!
하시는 겁니다.
"예 다행이네요 그럼 저는 바빠서 그만 가보렵니다." 하는 저의 말에
"응 바쁜디 어서가보소 오랜만에 본께 반갑네 어여가 바쁜디!" 하십니다.
"예! 그럼 수고하세요!" 하면서 다음 마을로 향합니다.
그러면서 슬며시 옛날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합니다.
그러니까 20여년 전 쯤 이었을까요? 그 시절만 해도 냉장고가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고
시골에는 주방에서 밥을 하는 것이 아니고 부엌에서 밥을 해먹고 지금은 논에서 김매기를
하지 않지만 그때는 무더운 여름에 마을에서 품앗이로 김매기를 하던 시절에 이였습니다.
방금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영감님께서 논에 김매기를 하셨답니다.
마을 사람들과 품앗이를 하던 시절이라 같이 일을 하시던 분도 서너분이 계셨겠지요.
뜨거운 여름인지라 점심때가 되면서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하여 같이 일을 하시던
분들과 점심을 드시러 집으로 오셨답니다.
집으로 들어오시자 아주머니께서 "막걸리 사다 놓았으니 잡수씨요! 거시기 텃밭에 가서
상추를 좀 뜯어오께라!" 하시며 아주머니는 텃밭으로 가신 사이 우물가에 놓아둔 시원스런막걸리를 한사발 씩 하셨답니다.
그런데 첫잔은 시원하게 한잔씩 하셨는데 두 번째 잔을 드시는데 이상하게 막걸리가 조금
심심한 것 같더랍니다.
"어째 이상하게 막걸리가 좀 심심한 것 같다." 하시자 옆에 계시던 분이
"뭐가 심심해 아마 우리가 더위를 먹어서 그런갑네 어서 한잔씩 더해!"
하시는 바람에 막걸리를 두어 잔 씩 드시고 마루에 앉아서 잠시 쉬고 계시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밭에서 돌아오셨답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시다 이내 다시 나오시더니
"아니 더운데 막걸리 잡수라니까 으째 안자셨어요?"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니 우리 아까 막걸리 마셨는데!" 하셨더랍니다.
"아니 막걸리 사다가 부엌에다 두었는데 어디 막걸리는 잡수셨소? 막걸리가 그대로 가만
있구만!" 하시는 겁니다.
"엉 그러면 아까 샘가에 있던 막걸리는 뭣이여?" 하시는 아저씨의 말씀에 아주머니께서는
깜짝 놀라시며
"아이고 그것은 밥하려고 쌀 씻고 받아놓은 쌀뜨물인데 이일을 으짜까?" 하셨더랍니다.
"엉 그라문 우리가 쌀뜨물을 마셨단 말이여 엉?"
그런데요 그때 쌀뜨물을 같이 드셨던 분들이 아직도 모두 건강하게 살고 계신답니다.
아마도 그때 쌀뜨물을 드셔서 그런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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