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작은 소원

큰가방 2003. 3. 9. 09:52
오늘도 이 마을 저 마을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문득 바라본 매화나무에는 조그만 꽃망울이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기나긴 겨울잠을 자고 있던 나무들을 어느새 찾아온 봄이 흔들어 깨웠나 봅니다.
그리고 이제 화사하고 아름다운 봄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듯 여기저기에서 봄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포근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전남 보성읍 대야리 강산마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강산마을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서편제의 본 고장입니다.
이제는 소리를 하시는 분들은 안 계시고 옛날에 이곳이 소리의 고장 이였다는 기념비
하나만이 마을 앞에서 이곳을 찾는 탐방 객들을 맞이할 뿐 무척이나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강산마을의 임선옥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가니 할머니께서는 마당에 나있는 풀을
뽑으시다 저를 보시더니 “오늘은 또 뭣을 갖고 왔으까? 뭐 반가운 것 갖고 왔어?”
하시며 저를 반기십니다.
‘할머니 의료보험 조합에서 우편물이 왔는데요!’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그라문 그라제 우리집이 은제 좋은 것이 왔간디! 내 손에 흙이 묻었응께 저그 말래다가
그냥 놔둬 이따가 내가 볼랑께!“ 하십니다.
할머니의 말씀에 따라 마루에 우편물을 놓아두고서 다시 오토바이에 오르려는 순간
할머니께서 갑자기 저를 부르시더니
“아저씨! 근디 우리 집 이는 으째 농민신문이 안 와 불데 내가 보내지 말라고도 안 했는디
갑자기 농민신문이 안와부러 으째 그라까?“ 하시며 저에게 물으십니다.
‘할머니 농민신문이 농협에서 보내드리는 신문인데요! 아마 제 생각에는 농협 조합원은
많고 보급되는 신문 부수는 한정이 되어 있어서 농협 조합원들에게 다 보내드리는지는
못하고 서로 번 갈아서 교대로 보내드리는 것 같아요!‘ 하고 설명을 드렸더니
“오! 그랑께 작년에 우리집이는 봤응께 내년에 보내 줄랑갑구만!” 하십니다.
‘아마 그러는 것 같아요!’ 하고 대답을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근디 아저씨 금방 말래다 갖다논 것이 뭣하라는 것이여?” 하시며 다시 물으십니다.
‘의료보험 조합에서 아드님에게 독촉장을 보낸 것 같던데요!’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썩을 놈이 바칠것이 있으문 얼렁얼렁 갖다 바쳐불문 되껏인디 안 갖다 바치드만 꼭 저른
것이 나오게 만들어싸 우리 아저씨들 성가시게 해쌋고 내가 돈이라도 있으문 내가라도 갖다
바쳐 불것는디 늙은이가 돈이 있어야제! 내가 아무리 없이 살아도 저른 것만 안 받고 살문
소원이 없것어“ 하시더니 한숨을 푹 쉬시는 겁니다.
‘할머니 왜 한숨을 쉬세요? 할머니가 잘못하신 것은 아니잖아요! 하는 저의 말에
“금메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도 그래도 내 자식한테 저런 것이 나와싼께 내 맘이 안 좋제
늙은이가 겨울에는 벌이도 없고 그란디 으서 돈 나올 구먹도 없고 인자 봄이 되문 으추고
벌어서 내가 얼렁 갚어부러야 쓰것구만! 아저씨 바쁘신디 무단이 붙잡고 쓸데없는 이야기
만 해갖고 미안하구만 얼렁 가봐 아!“ 하십니다.
‘예!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저 갑니다’ 하면서 할머니 댁을 나옵니다.
‘할머니 금년 봄에는 부디 돈 많이 버셔서 아드님 밀린 의료보험료도 갚으시고 꼭 소원을
이루시고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하는 마음으로요
이제 저는 다음 우편물을 배달하여야 할 옥암리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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